껍질을 벗고 나답게 산다는 것: 진짜 나로 살아가는 용기에 대하여

처음으로 달걀을 맨손으로 깼을 때, 나는 이상하게 겁이 났다.
흰자가 흘러내릴까 봐서도, 노른자가 터질까 봐서도 아니었다.
껍질이 생각보다 얇았기 때문이다.
딱딱할 줄 알았는데, 손끝에 힘을 조금만 줘도 부서졌다.
나는 그 얇은 껍질이 무색하게 소중한 것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그날 이후 한동안 계란을 깨는 일이 어색했다.

그 후로 나는 사람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얇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금이 간다.
그리고 그 안엔 노른자처럼 흔들리는 마음이 있다.
그건 쉽게 상하고, 쉽게 흘러내린다.

내가 처음 껍질을 인식한 건, 아버지 앞에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엄마에게 맞고 울다가 아버지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넘어졌어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 내 안에서 무언가 딱 하고 갈라졌다.
내 감정을 숨기는 방법을 그때 처음 배운 셈이다.
그 이후로 나는 말보다 표정을 먼저 신경 쓰는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 느끼기 전에, 그 감정을 어떻게 숨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껍질이 나인 줄 알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 말투, 웃을 때 생기는 눈가 주름, 적당히 다정한 리액션.
그것들을 나라고 믿고 살았다.
그렇게 행동하면 일이 잘 풀렸고, 갈등도 적었다.
그래서 별 의심 없이 껍질을 닦고 윤을 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밤에 혼자 있을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진짜 나일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웃을 수 없다면, 그 웃음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이제야 조금씩 껍질을 벗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무례해 보일까 걱정하지 않고 “싫어요”라고 말하는 법,
누군가가 울 때 같이 울고, 기쁜 일을 나보다 더 기뻐하지 않아도 되는 법.
그건 용기보다 연습이 필요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 살라’는 말은
심연에서 헤엄치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껍질을 벗을수록 숨 쉬기가 쉬워졌다.
사람들이 다 떠날까 봐 두려웠지만, 남는 사람도 있었다.
내 노란 마음을 꺼내 보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들과 있을 땐 껍질이 필요 없었다.

이제는 계란을 깰 때 겁나지 않는다.
삶은 계란이든 반숙이든, 그 속엔 늘 어떤 형태의 진심이 있다.
껍질이 깨지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노른자가 공기와 닿을 때, 비로소 생명이 숨을 쉰다.

나도 그렇다.
말 한마디, 침묵 한순간, 눈길 하나가
내 안의 껍질을 조용히 깨뜨릴 때,
비로소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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