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돼지 저금통과 쌀 한 줌의 기억 – 1970년대 한국의 절약과 가족애”

1970년대, 마을 어귀마다 새마을 깃발이 펄럭였다.
절약이 애국이라 믿었고, 저축은 어른스러움의 증표였다.
학교에서는 ‘저축왕’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의 동심에 작은 경쟁을 불어넣었고,
집 부뚜막 위에는 어김없이 절미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짓기 전, 쌀 한 줌을 조용히 그 항아리에 넣으셨다.
그 한 줌은 곧장 항아리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오래도록 항아리 속에 머물렀다.

통장 속 빨간 도장은, 어린 나에게 별처럼 빛나는 상장이었다.
은행원 아저씨가 매주 학교에 찾아오는 날이면
나는 소매 끝에 몇십 원을 꼭 쥐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돈이 미래가 된다는 말은 몰랐지만,
무언가를 모은다는 건 분명 설레는 일이었다.

내 방 구석에는 빨간 플라스틱 돼지 저금통이 있었다.
맑고 단단한 플라스틱 속에 동전들이 하나둘 쌓이면
마치 돼지가 배 속에 시간을 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돼지는 내 것이 아니었다.
누나의 것이었다.
누나는 읍내 학교까지 매일 걸었다.
버스를 타면 편했겠지만, 하루 두 번의 걷기 속에서
누나는 조용히 동전을 모았다.
그 돈은 간식도, 옷도 아닌 미래를 위한 인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수업이 끝난 뒤 나를 부르셨다.
수업료가 아직 밀렸다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천근 같았다.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잠시 침묵하던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없다. 그냥 가거라.”
나는 울먹이며 떼를 썼다.
선생님께 또 혼날까 봐 무섭고, 창피하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그때 어머니는 천천히 부엌으로 향하셨다.
찬장 위에서 누나의 돼지 저금통을 꺼내시더니,
주방 칼을 들고 돼지의 배를 가르셨다.
‘쨍’—
작은 단말마처럼 저금통이 울고, 동전이 쏟아졌다.
달그락, 달그락.
그 소리는 내 마음속 어디에선가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 돈을 꼭 쥐고, 다음 날 수업료를 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날 저녁, 누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저금통이 없어진 부엌을 보고는 말없이 멈춰 섰다.
잠시 후, 내 방으로 와서는 낮게,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그 돈, 내가 얼마나 아꼈는지 너는 몰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멍해졌다.
그리고 집 뒤 굴뚝 옆으로 도망쳤다.

밤이 오고, 마당에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퍼졌다.
어둠 속에서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연기 냄새가 옷에 밴 채로, 눈물은 뺨을 타고 굴뚝 재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버지의 거친 손이 내 어깨를 감쌌을 때, 나는 더 이상 울 수 없었다.
“이 녀석, 마음이 많이 졸았구나…”
그 순간, 나는 어른이 되는 첫 발걸음을 디딘 듯했다.

며칠 뒤, 누나에게 짧은 쪽지를 썼다.
‘누나 미안. 너한테도 말 못 하고, 돼지한테도 말 못 했어.
근데 나, 혼나는 게 무서웠어.
그리고 지금은… 더 부끄러워.’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을 글로 써서 학교 글짓기 대회에 냈다.
최우수상.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쓴 건 사건이 아니라, 진심이구나.”

지금은 소비가 능력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돈은 쓰는 것이라 배우지만,
나는 여전히 무엇을 ‘모은다’는 행위에 더 마음이 간다.

내 책상 서랍 깊숙이,
갈라진 돼지 저금통의 조각이 아직 남아 있다.
플라스틱 조각 틈 사이로 오래된 동전 하나가 굴러다닌다.
누나의 인내, 어머니의 쌀 한 줌, 그리고
내 첫 번째 죄책감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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