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주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자주 묻는다.
“지금, 나를 지켜주는 건 무엇인가?”

젊을 땐 꿈이 나를 지켰고,
중년에는 책임이,
그리고 지금 은퇴 후의 삶에 들어서서야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삶을 바닥에서부터 받쳐주는 마지막 울타리는,
어쩌면 조용히 숫자로 존재하는 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오래도록 돈에 대해 입을 닫고 살아왔다.
유교적 가치 아래, ‘정신이 물질을 이긴다’는 믿음 속에서 자랐고,
학교는 인격과 도덕을 우선시했다.

돈을 말하는 일은 어딘가 비도덕적인 것처럼 여겨졌고,
나 또한 그렇게 배워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은 관념을 이기고, 현실은 이상을 밀어낸다.
정년 후 매달 반복되는 공과금 고지서와 병원 진료비 앞에서,
나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라는 말이
현실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이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를 집어 들고, 다시 내려놓았다.
차이는 천 원이었다.

그날따라 천 원이 내게 너무 많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마음이 지쳐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낯선 쓸쓸함에 사로잡혔다.

돈이 부족하면 선택이 사라지고,
선택이 사라지면, 사람은 조금씩 자신을 잃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야.”
맞다.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은 대개
돈이 어느 정도는 있는 사람들의 말이다.

돈이 없으면, 불행을 피할 최소한의 여유조차 사라진다.
거절할 권리도, 쉴 권리도, 심지어 아플 권리도.

한 유튜버의 고백이 생각난다.
지극히 성실하게 회사를 다녔지만,
돌아온 건 몇 푼 오른 월급과 함께 찾아온 우울증, 공황장애였다.

그는 옥상에 올라가 말했다.
“내게 돈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그는 그 순간, 죽음을 앞두고서야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다고 했다.

그 말이 어딘가 가슴을 찔렀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삶의 소중함을 느낄 기회조차
경제적 여유가 허락할 때만 가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궂은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성실하고 정직하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대우하지 않는다.

수입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겉으로 보이는 일의 성격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그 불공평함 속에서, 나는 묻는다.
돈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돈이 없으면 사람 대접받기조차 어려운 세상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그러나 이쯤에서 멈추고 싶다.
돈을 원망하거나 숭배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다만 말하고 싶다.

돈은 나를 지켜준다.
그러나,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나를 증명한다.

돈은 단지 물건을 사는 수단이 아니라,
고요한 아침을 누릴 수 있는 여유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밥을 지을 수 있는 자유이며,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묻고 싶다.
“당신을 지켜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언젠가, 이 질문에
“나 자신”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와 자립을 우리 모두가 품을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글 보기

돈, 내 안의 그림자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