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앞 정화수, 어머니의 새벽 기도 — 잊히지 않는 삶의 풍경

어머니는 늘 새벽 4시면 일어나셨다.
아직 어둠이 바닥에 눌러붙어 있던 시간.

부엌을 지나 뒷문을 열면, 바람이 먼저 들어왔다.
그 찬 공기를 얼굴 가득 받아들이며
어머니는 장독대 앞에 섰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무 빗으로 조심스레 머리를 빗은 후
어머니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장독들 사이, 그 낮은 돌바닥 위에서.
그 모습은 마치 겨울을 견디는 낙엽 한 장 같았다.
떨고 있었지만, 버티고 있었다.
흩어질 듯하면서도 끝내 자리를 지키는 침묵.
그게 어머니의 기도였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
어머니는 장독 하나 위에 유리그릇을 올려
맑은 정화수 한 그릇을 떠놓곤 하셨다.
그 물은 말없이 고요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어머니는 기도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나는 어린 시절, 방문 틈 사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말없이 흔들리던 그 새벽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도라기보다는
숨죽인 기다림 같았고,
때론 무언의 포기,
혹은 담담한 바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누구를 부르셨을까.
우리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신 안의 허전함을 어루만지고 있었던 걸까.

기도는 어머니에게
습관이 아니라, 버팀목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기도를 종교라 부르지만,
어머니에게 기도는 신을 향한 예배이기 이전에
삶을 끌고 가는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는 일,
어제의 잘못을 내려놓는 일,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을 견딜 힘을 구하는 일.
그 모든 것이 장독대 앞에서 이뤄졌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기도를 말로 설명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조용한 새벽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무언가를 내게 가르치려 하지 않으셨지만,
무엇을 남길지 정확히 알고 계셨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기도 속에 있지 않다.

어머니가 떠나신 뒤,
그 시간은 텅 빈 장독대처럼 조용하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새벽 공기 속에 낯익은 냄새가 흐른다.
된장과 서리, 이슬과 기도의 냄새.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은다.

기도는 어쩌면,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는 가장 조용한 유산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은 적이 없지만,
그 기도는 지금도 내 안에서 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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