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냄새처럼 스며든다: 일상 속 권력의 정체

권력은 냄새가 난다. 처음엔 맡지 못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알 수 있다. 은근히 배어 있는 고집, 눈치로 압도하는 공기, 침묵 속에 감춰진 위계. 우리는 그런 냄새를 맡으며 자라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 냄새를 피해 숨을 고른다.

어릴 적 권력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있었다. 아버지의 발소리만 들어도 몸이 먼저 긴장했고, 어른의 말은 의심 없이 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물건이 없어지면 “애들이 그랬겠지”라는 말이 먼저 나왔고, 우리는 늘 어떤 죄의 가능성 속에 존재했다. 억울했지만, 그 억울함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기엔 너무 어렸다.

학교는 더 분명했다. 선생님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칠판 앞에 서기만 해도 공기가 달라졌다. 어떤 아이는 단 한 번의 잘못으로 ‘문제아’가 되었고, 그 꼬리표는 졸업 때까지 따라다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여야 했고, 웃지 않아도 웃겨야 했다. 그 안에서 나는 말을 아끼는 법을 배웠다.

군대에서는 권력이 목소리로 들렸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은 자주 들었고, 그 말에 담긴 함의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몇 달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 시간만큼 무거워졌고, 어떤 말은 그 무게를 더해 진실처럼 굳어졌다. 나는 그곳에서 복종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을 숨기는 법을 익혔다.

직장에 들어와서야 나는 권력의 냄새에 익숙해졌다. 회의실에서 누가 먼저 입을 여느냐가 이미 답이 되었고, 침묵이 길어질수록 발언권은 서열의 역순으로 줄어들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정치적’이라는 말을 자랑처럼 말했다. 그 말 뒤엔 ‘나는 사람을 안다’는 자부심이 숨어 있었고, 나는 그런 사람 옆에 앉는 것을 피했다. 말보다 기류가 빠르고, 기류보다 표정이 더 정확했다.

가정이라고 다를까. 연애를 할 때는 몰랐던 기싸움이 신혼에 들어서며 시작되었다. 설거지를 누가 하는지보다, 누가 먼저 말하느냐가 중요했다. 양보가 미덕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마음속에 저울이 생겼다. 오늘은 내가 참았으니 내일은 네가 참아야 한다는 식의 계산이 쌓였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조차 우리는 종종 권력을 나누려 했다.

정치는 권력의 가장 날것의 형태였다. 지도자 한 명의 욕망이 수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고, 전쟁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무너뜨렸다. TV 속 뉴스를 보며 가슴이 서늘해질 때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과연 밤에 잠은 잘 오는가. 그건 비난이 아니라, 권력의 무게를 상상해보려는 하나의 몸짓이었다.

권력은 도구일 뿐이다. 사람을 살릴 수도, 억누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도구를 쥔 사람의 마음이다. 누군가는 그 도구를 벽돌처럼 쌓아 올리고, 또 누군가는 방패처럼 휘둘러댄다. 아주 드물게, 누군가는 그것을 거울처럼 사용한다. 자기 자신을 비추는 데 권력을 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다. 그는 많이 말하지 않았고, 자리를 먼저 차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중심으로 모였다. 그의 권력은 조용했고, 그래서 더 단단했다.

나 역시 작지만 단단한 권력을 가지고 싶다. 말에 책임을 지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알며, 때로는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스스로를 설득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지금 내 삶의 목표다.

우리는 권력을 멀리하면서도, 동시에 원한다. 그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본다. 지금 내 말, 내 행동, 내 침묵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어떤 냄새의 권력을 풍기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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