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이랍니다 — 군대에서 이름을 잃는 순간, 조롱과 침묵의 심리학

군대 이야기가 지겨운 건
늘 허세 아니면 무용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나는 내 이름을 잃었다.
그 시작은, 단 한 마디였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다
군에 입대했다.

철원 6사단 본부중대 작전병.
나이는 많았고, 눈치는 더 많았다.
실수 없이, 말 없이, 조용히.
그게 생존이었다.

그러다 새벽.
불침번 근무 중.
행정반에서 선임하사가 외쳤다.

“비상! 비상!”

나는 당황해 고참을 깨우며 말했다.
“비상이랍니다…”

그 한 마디로
나는 ‘고문관’이 되었고
내 별명은
**‘비상이랍니다’**가 되었다.

누구는 웃었고
누구는 따라 했고
나는 조용해졌다.

“비상이랍니다 왔다~”
“비상 보고 들어왔습니다~”

웃음으로 포장된 조롱은
내 이름을 지웠다.

나는 침묵했다.
말대꾸도, 반박도, 부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했다.
가장 먼저 기상하고
가장 늦게 잠들고
말수를 줄였다.

결국 별명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남지 않았다.

지금 와 생각한다.
진짜 나빴던 건
그 별명이 아니라
그 침묵이었다.

누구도 “괜찮다” 하지 않았고
나도 “그만해달라” 말하지 못했다.

‘비상이랍니다’는
실수가 아니라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어설픈 구조요청.

학교에도
회사에도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다.

어눌한 말투,
작은 실수 하나로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는
그 곁에 있으면서
웃고 있진 않았는가.

아무 말 없이.
묵인하며.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누구의 이름을 바꾸고 있는가.

혹은,
누군가 내 이름을 지우고 있진 않은가.

“비상이랍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신호였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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