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의미 – 인간으로 남기 위한 조용한 고백

어느 날부터인가 세상이 낯설어졌다.
늘 앉던 의자가 불편해지고, 책의 문장이 흐려졌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멀리서 울리는 금속성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모든 것이 나를 비켜가고 있었다.

아픈 건 나였는데,
세상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 무심함이 통증보다 깊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바랐다.
누군가 내 아픔을 알아차려주길.
그저 불쌍하다고라도 말해주길.
그 마음이라도 나를 붙잡아주길.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세상은 너무 바쁘고,
나는 그 바깥에 있었다.

그 무렵, TV에서 황소개구리 사냥꾼을 보았다.
해질 무렵, 붉게 물든 수로 위에서
그는 삼지창을 겨누고 있었다.
창끝이 반짝일 때마다 물 위가 크게 출렁였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생태계를 지켜줘서 고맙다.”
“저런 건 잡아야 한다.”

그 말들을 들으며 마음 한켠이 서늘했다.
사냥꾼의 창끝에 꿰인 생명체가
어쩐지 나와 닮아 있었다.
조용히 살아가던 이방인,
이해받지 못한 존재,
이유 없이 불편한 사람.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향해 쉽게 미움을 품는다.
‘공동체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옳음’이라는 명분으로.

그날 밤, 그녀가 떠올랐다.
한때 나는 그녀를 오래 쫓았다.
그녀의 무심함이 미워서,
그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 믿어서.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녀가 나를 보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사랑은 받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차리는 일이라는 걸.

요즘 나는 개미 한 마리라도 밟을까 두렵다.
길을 걸을 때면 발끝이 조심스러워진다.
살아 있는 것들의 미세한 움직임이
내 부주의로 멈춰버릴까 봐 겁이 난다.
그 두려움이 나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아픔은 관심을 구하는 신호가 아니라,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시작이었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누군가의 고통을 모른 척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바람 하나로,
나는 아직 인간 쪽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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