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과 썰물, 갯벌에서 배우는 인생의 숨결

갯벌에 발을 디디는 순간, 세상은 낯설게 변한다.
단단한 듯 보이지만 쉽게 무너지고,
허술한 듯 보이지만 묵직하게 붙잡는다.

저울이 없어도 갯벌은 무게를 안다.
가볍게 지나가면 발자국만 남기고,
깊이 짓누르면 발목까지 삼킨다.
그 무게가 곧 한 사람의 삶이 된다.

코끝을 스치는 바닷내.
멀리서 부딪히는 파도 소리.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결.

갯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숨결까지 기록한다.
조개껍질이 바스락거리고,
게는 옆걸음을 치며 재빨리 숨는다.

흙 속에서 꿈틀대는 갯지렁이.
고요한 수면 아래서 들려오는 물방울의 울림.
갯벌은 늘 살아 있다.

밀물이 차오르면 바다는 모든 것을 지운다.
사람이 남긴 흔적,
생명의 분주한 움직임,
작은 상처까지도.

물결은 모든 것을 삼켜 고요를 만든다.
그러나 썰물이 오면,
감춰졌던 것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어제의 발자국.
미처 보지 못한 생명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파편들.

숨었다가 드러나고,
지워졌다가 되살아나는 그 순환은
곧 삶의 호흡과 닮아 있다.

고깃배들도 그 리듬을 따른다.
물이 차오르면 노를 저어 먼 바다로 나아가고,
물이 빠지면 반드시 돌아온다.

머물러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놓치면,
육중한 배조차 갯벌에 붙들려 꼼짝하지 못한다.

삶도 그러하다.
흐름을 읽지 못하면 발걸음이 묶이고,
한순간의 욕심이 길을 막는다.

나는 갯벌 위에서 자주 뒤돌아본다.
금세 물결에 지워질 발자국들.
그러나 지워진다고 해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잠시 남았던 무늬,
스쳤던 생명들,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파동.

그 모든 것이 갯벌을 갯벌답게 한다.
삶도 다르지 않다.

잊힘과 기억,
만남과 이별,
웃음과 눈물이 뒤섞여야
비로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저녁 햇살이 길게 번지고,
다시 밀물이 들어온다.
갯벌은 천천히 몸을 감추며 물속에 잠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물결 아래에도
여전히 갯벌은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삶 역시 그러하지 않은가.
감추고 드러내며,
사라지고 돌아오며,
끝없이 이어지는 숨결.

갯벌은 오늘도 묻는다.
너의 발자국은 지금 어디쯤 남아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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