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빠진 이빨에서 배운 인생의 진실, 놓는다는 것의 용기”

퇴근길.
축축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열쇠를 돌리는 손끝엔 하루치 피로가 묻어 있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딸아이가 작은 불꽃처럼 튀어나왔다.

“아빠! 나 이빨 뺐어!”

작고 반짝이는 두 알의 유치가 딸의 손바닥에 올려 있었다.
아직 잇몸엔 핏자국이 어른거렸지만, 그 아이는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은 작고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용한 선언,
세상을 향한, 성장의 첫 문턱을 넘은 누군가의 당당한 첫걸음이었다.

“시원해.”
딸은 입을 벌려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물었다.
“무서웠어?”
조금 망설이더니, 딸은 고개를 저었다.

“무서웠는데, 뽑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

그 말이, 이상하게도 오래 가슴에 남았다.
나는 되물었다. 내 안엔 지금 뽑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무서워하며 붙잡고 살아왔던가.
후회, 자존심, 미련, 실패한 말들.
내 마음 안에는 이미 흔들리고 썩은 이들이 가득한지도 모른다.

딸은 고통을 통과해 웃었다.
나는 고통을 피하느라 웃음을 잃었다.

그러니까 오늘,
딸은 나보다 조금 더 어른이다.

밤.
딸이 잠든 침대 곁,
나는 딸의 이 두 개를 조심스레 종이에 싸 베개 밑에 넣었다.

“이빨 요정이 올까?”
낮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맴돌았다.

그 작은 유치 두 개는
나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놓는 것도 사랑이고,
잃는 것도 성장이라고.

무언가 빠져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다고.

나는 묻는다.
혹시 내 안에도
이제는 뽑아야 할 ‘이’가 있지 않을까.

붙잡고만 있는 그 무엇이
내 마음을 썩히고 있는 건 아닐까.

빠진 이는 다시 나지만,
빠진 마음은 그 자리에 오래 남는다.

그 자리를
이젠 들여다보아야 할 때다.

텅 빈 듯하지만
그 안엔 다음을 기다리는 조용한 삶이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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