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시골 산길을 걸을 때면, 어둠이 먼저 다가왔다.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길목마다 조용히 서 있던 상엿집이 풍기는 기운 때문이었다.
아이였던 나는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이유도 모른 채 숨을 멈추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이었지만, 죽음이 가진 차가운 그림자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집 주변에는 말해지지 않은 금기가 있었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피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부모님을 보내고, 아내를 보내며 나는 죽음을 더는 남의 일처럼 떠밀어둘 수 없게 되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순간은 늘 입관식이었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얼굴.
그 얼굴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적막했고, 더 또렷했고,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뚜껑을 내리며 울리는 쾅 하는 소리.
그 소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라,
‘너도 언젠가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는 무언의 경고처럼 가슴을 깊게 울렸다.
나는 그 순간마다 어두운 골목에서 뛰던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며칠 전 매제의 입관식에서 처음으로 죽음의 모습을 다르게 보았다.
장례지도사 두 사람이 조용히 방 안에 들어와 매제의 몸을 정갈하게 정리했다.
그 손길에는 직업적인 반복이 아닌, 사람에 대한 예가 담겨 있었다.
말보다 조용한 움직임이 방 안 공기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차가운 손등을 따뜻하게 비비며 지도사는 말했다.
“사람은 죽어도 36시간 동안 귀가 열려 있습니다. 마지막 말을 전하세요.”
그 말은 마음 어딘가를 풀어버리는 열쇠처럼 들렸다.
죽음이 완전한 단절이라고 생각했는데,
떠난 이가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죽음의 표정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염을 마친 매제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
그 표정에는 오래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은 사람의 가벼움이 있었다.
삶의 욕망도, 근심도, 억눌림도 벗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얼의 온도’라는 것을 느꼈다.
몸은 이미 차가웠지만, 생이 남긴 흔적은 어떤 형체로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죽음은 두려움의 얼굴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방 안에서 죽음은 조용했고, 깊고, 품위 있었다.
어린 시절 상엿집을 보며 느꼈던 공포는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모르는 데서 생긴 두려움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몽테뉴가 “철학하는 것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죽음을 배운다는 것은 죽음을 준비한다는 뜻이 아니다.
삶을 조금 더 깊게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다.
죽음이라는 무게를 배경에 두면 삶의 중심이 달라진다.
사소함은 사소함으로 물러나고, 중요한 것만 자리를 잡는다.
말은 부드러워지고, 성급함은 줄어들고, 하루는 이전보다 더 선명해진다.
죽음을 가까이 두면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제자리를 찾는다.
삶의 결이 바로잡히는 것이다.
나는 문득 미래의 나를 상상해본다.
언젠가 나 역시 관 위에 누워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을까.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감사하며,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숨을 내쉴까.
이 질문은 죽음의 질문이 아니라, 삶의 질문이다.
마지막을 떠올릴 때 비로소 오늘을 더 깊게 살아낼 수 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중요해진다.
죽음을 배운다는 것은
오늘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이제 상엿집을 떠올려도, 예전처럼 도망치고 싶지 않다.
그 집은 여전히 조용하겠지만, 그 침묵의 의미를 나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은 삶의 적이 아니라
삶이 흐르는 방향을 비춰주는 마지막 등불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관뚜껑이 닫힐 때,
그 쾅 하는 소리가 공포의 종소리가 아니라
긴 여정을 끝낸 여행자의 숨 고르기처럼 들렸으면 한다.
삶을 다 살았다는 작은 위로처럼.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향하지만,
그 길 위에서 삶은 여전히 피어난다.
그래서 죽음을 배우는 일은
곧 삶을 더 깊게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그 사실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마지막까지 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공부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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