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안부두 목로주점에서 마주한 중년의 위로, 술잔에 담긴 이야기

인천 연안부두. 바닷바람이 밤공기를 헤집으며 골목을 적신다.
컨테이너 불빛이 깜빡이는 부두 너머로, 작은 목로주점 하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오래된 나무 탁자에서 피어오르는 술 냄새와 구수한 생선찌개 향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와 나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춥네.”
그 말 하나로 시작된 술자리는, 어색함과 피로함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었다.

술이 들어오고 잔이 돌기 시작한다.
소주는 말이 없고, 잔은 가볍다.
말 대신 잔을 채우는 일이 더 익숙해진 사이, 우리는 침묵으로도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요즘 너도 좀 버겁지?”

그의 물음은 담백했다.
오래 눌러왔던 말들이 그 한마디에 부풀어 오르다, 다시 가라앉았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술잔을 들어 그 마음을 받았다.

소주가 목을 타고 흐르듯, 오래 묵힌 감정들도 조용히 풀린다.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살아 있을 때보다, 돌아가신 후에 더 많은 얘기를 하게 돼. 이상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이해하진 못해도, 존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닦아주었다.

창밖엔 연안부두의 불빛이 은은하게 번지고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와 바닷바람, 그리고 오래된 트로트 한 곡이 흘러나오는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잠시 사람다워졌다.

술자리는 어쩌면 하나의 정류장이다.
일상의 속도에서 잠시 내려, 묵은 마음들을 정리하고 다시 나아가기 위한 곳.
누구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고, 모두는 잠시 머물다 떠난다.

그날 이후, 나는 술을 마시는 일이 단순한 해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비워내는 일이었다. 감정을, 기억을, 사람을.
지우기 위함이 아니라, 더 단단히 채우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비움.

인천 연안부두, 그 목로주점의 밤은 종종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나무 탁자에 놓인 빈 소주병,
서로 말을 아끼며 건넨 진심들,
그리고 바깥에선 여전히 흔들리던 부두의 바람.

언젠가 또다시 지칠 때, 나는 그곳을 떠올릴 것이다.
누구나 그런 밤이 있다.
말보다 술이, 이해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건넨 밤.

그러니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면,
당신도 괜찮다.
혼자 조용히 잔을 기울이는 것, 그것도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 있으니.

비워낼 수 있다면, 다시 채울 수 있다.
사람도, 삶도, 나 자신도.
우리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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