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진짜 얼굴 — 허기가 우리를 움직이는 힘

올림픽의 승자도
전쟁의 영웅도
국가의 왕도
배고픔을 이길 수는 없다.

이 문장을 떠올린 건 어느 겨울 저녁이었다.
찬밥을 데우기엔 피곤했고,
나는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허겁지겁 비볐다.
숟가락을 들자마자 허기와 피로가 뒤섞여 묘한 고요가 밀려왔다.
그 고요 속에서 문득 떠올랐다.
사람이란 결국 얼마나 단순한가 하는 생각이.

허기는 늘 몸에서 시작되지만
마음으로 번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한 끼가 비면 표정이 흐려지고,
목소리가 짧아지고,
사소한 말이 마음을 긁는다.
나는 그때 처음이었다.
허기야말로 인간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감각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옛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배가 비면 다리가 흔들린다.”
그는 마라톤 선수였고,
승부의 순간이 의지보다 공복감에서 무너진다고 말했다.
결국 인간의 의지도
위장에서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군대에 다녀온 친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총소리가 무서운 게 아니라,
새벽 근무가 끝났는데도 식당 문이 열리지 않는 그 몇 분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용기와 비겁함의 경계도
허기 앞에선 너무 쉽게 흔들린다.

왕도 예외가 아니다.
권력은 크지만 배는 작고,
찬밥 한 공기 앞에서 왕은 누구보다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나는 박물관에서 본 조선 왕의 ‘수라상 기록’을 아직도 기억한다.
수십 가지 반찬이 놓였으나
왕이 젓가락조차 들지 않은 날들이 적지 않았다는 기록.
정치보다 허기가 더 큰 힘을 가진 날이
그 왕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오래 품고 있는 장면은
어린 시절의 어느 밤이다.
아버지는 퇴근 후 말없이 국수를 말아 드셨다.
그릇을 비운 뒤에서야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고,
그 짧은 변화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 사람이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따뜻한 한 끼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허기가 채워지면
사람은 비로소 사람을 볼 수 있다.
눈빛이 느슨해지고,
말이 부드러워지고,
세상이 잠시 덜 적대적으로 느껴진다.
먹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오늘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도 가능해진다.
허기 앞에서 철학은 잠시 멈추고
몸이 먼저 해답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배고픔의 종류가 많아졌다는 걸 느낀다.
몸이 느끼는 허기,
관계 속에서 생기는 허기,
인정받고 싶은 허기,
어딘가에 닿고 싶은 마음의 허기.
사람은 저마다 다른 공복을 품고 살며
그 허기가 이끄는 방향으로 하루를 움직인다.

결국 삶은
어떤 허기를 먼저 채우느냐의 선택에서 갈라진다.
어떤 허기를 외면하느냐에서 무너지고,
어떤 허기를 인정하느냐에서 다시 살아난다.

오늘도 나는 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허기를 채운다는 건
생존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것을.
숟가락을 놓는 순간,
몸이 먼저 평온을 찾고
그 평온이 잔잔하게 마음을 뒤따라온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만 남긴다.
지금의 나는 무엇에 굶주려 있는가.

그 질문 하나면,
삶의 방향은 다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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