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나는 걷는 법을
명령으로 배웠다.
철원의 찬 바람,
단독군장의 무게,
100킬로 행군 끝에 남은 건
움직일 때마다 삐걱이는 무릎 하나였다.
젊은 날의 고통은
지나갔지만
무릎은 지금까지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시작된
걷기와의 관계.
30대, 교단에서 받은 피로를 안고
퇴근 후 야산을 찾았다.
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숨을 쉴 수 있었다.
햇빛은 조용했고
나무는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걷는 동안만큼은
나는 나에게 솔직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자라고,
삶의 무게가 늘었다.
갈등이 쌓이고
상처가 곪아갈 때,
나는 또 걷기 시작했다.
말 대신 걷고,
울음 대신 걸었다.
어느 날은 조용히,
어느 날은 분노를 끌고,
무릎은 아팠지만
진짜 아팠던 건 마음이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이제는 무릎을 위해
걸음을 아끼지만,
하루 한 시간의 걷기는
여전히 내 삶의 중심이다.
걷는 동안 나는
후회도, 회복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들도 꺼내본다.
걷는다는 것은,
삶을 견디는 조용한 기술이다.
걷기 덕분에
담배도 끊고,
술도 멀리하게 되었다.
내 욕망은 줄었고,
생각은 깊어졌다.
이제 나는 안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나를 되묻는 시간,
내 안의 소리를 듣는 작은 기도라는 걸.
오늘도 나는
길 위에 선다.
무릎은 여전히
예전의 기억을 품고 있지만
발걸음은 그보다
조금 더 가벼워졌다.
바람 한 줄기,
가을빛이 묻은 나뭇잎 하나가
앞을 스쳐간다.
나는 그 조용한 장면 앞에
잠시 멈춘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어디로 향하든,
나는 걸을 것이다.
이 길 위에서만큼은
내가 나에게 가장 가까워지니까.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인생에서도
한 걸음씩,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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