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모래톱에서 실연을 껴안다: 이별 후 마음을 치유한 바닷가의 기록

실연 후, 처음으로 정동진에 갔던 날.
기차에서 내리자 바닷바람이 불었고,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휘청거렸다.

역에서 모래톱까지 이어지는 길.
나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눈물이 계속 났지만, 이상하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해는 지고 있었고,
사람들 없는 해변엔
어디에도 내 이름을 아는 이 없었다.

정동진의 모래 위에 섰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딛는 순간,
축축한 감촉이 발바닥에 스며들었다.

그 감촉은 차가웠지만
어딘가 다정했다.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이었다.

그날의 나는
사랑보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사람이었다.
붙잡지 못한 게 아니라,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내가 더 괴로웠다.

모래는 묻지 않았다.
왜 울었는지, 누구 때문인지.
그저 묵묵히 나를 받아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때로 사람은 말보다
받아주는 침묵이 필요하다는 걸.

주변에는 나처럼 조용히 걷는 이들이 있었다.
흐느끼는 사람,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도.

정동진의 모래는 모두를 품었다.
누구도 가볍게 보지 않았고,
누구의 슬픔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실연이란,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그 사람 없이도 살아야 하는
‘나’와의 새로운 싸움이었다.

모래 위에서 나는 그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조금씩
내가 나를 껴안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아주 작게 웃었다.
다 끝났다고, 이제 괜찮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정동진의 모래가 있어
무너지지 않았다는 건 분명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종종 그 해변을 찾는다.
바다는 여전히 넘실거리고,
갈매기는 날개를 흔든다.

그 속에서 가장 조용한 존재는
모래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모래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러 오지만,
나는 모래를 보러 간다.
실연의 발자국, 후회의 발자국,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발자국까지.

정동진의 모래는
다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품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마음 어딘가가 부서져 있다면,
언젠가 한 번쯤 정동진의 모래 위를
걸어보기를 바란다.

그곳엔
말 없이 당신을 받아줄
조용한 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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