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를 되찾는 법: 조용히 부서지던 나에게 말을 건넨 날

창밖에 바람이 분다.
말라붙은 이파리들이 발끝까지 몰려와
아무 말 없이 흩어진다.

가끔은 그런 것들에서 나를 본다.
오래 붙잡고 있던 말,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
조용히 눌러둔 감정들.

나는 어릴 때부터 침묵에 익숙한 아이였다.
놀라거나 아플 때도 먼저 운 적이 없었다.

대신 눈을 피했고,
입술을 깨물었고,
마음을 조용히 접었다.

사람들은 나를 차분하다고 했고,
어른들은 사려 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조금씩 작게 부서지는 방식이었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평소처럼 수업을 듣던 중,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다.

교실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 자국을 바라보며
문득 알게 됐다.

마음이 너무 오래 가라앉으면
스스로 물이 되어버린다는 걸.

그때부터 나는
나를 조금씩 꺼내 보기로 했다.

아주 작은 조각부터.
싫다는 말을 꺼내는 데 6개월이 걸렸고,
아프다는 말은 그보다 더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는 나를 조금씩 되찾는 느낌이었다.

물러서는 대신,
서 보는 연습을 했다.

참는 대신,
감당하는 법을 배웠다.

아직도 말은 쉽지 않다.
어떤 날은 아주 작은 오해에도
마음이 벌겋게 타들어 간다.

무심한 말 한 줄에
하루를 통째로 놓치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그 침묵은 나를 지켜주는 갑옷이 아니라,
조금씩 나를 지워가는 칼날이었다는 걸.

한 번은 가까운 사람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전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말했다.
“이제야 네가 보이는 것 같아.”

그 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나 역시 처음으로
내 안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한다는 건
세상과 싸우는 일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나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드는 작은 몸짓.

상처를 피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조심스러운 채로 말한다.

침묵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부서지더라도
나를 접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세상을 부른다.

숨죽인 말들 사이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살아 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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