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지하철에서 아이 하나가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눈빛은 화면 속 세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아주 오래전 나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손에는 핸드폰 대신 나무칼을 쥐고 있었고, 눈은 사방을 둘러보며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토끼와 꿩을 찾고 있었다.
그 시절, 내 놀이터는 뒷산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학골산’이라 불렀지만, 우리에겐 그냥 ‘산’이었다. 붉은 황토가 벌겋게 드러난 민둥산, 듬성듬성한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바람에 삐걱대던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넓고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우리는 다섯 명. 윗집 형이 대장이었고, 우리는 그의 병사이자 동료였다. 우리끼리 붙인 이름이 있었다. ‘산 토꿩대’. 토끼와 꿩이 많았고, 우리가 그들을 쫓아다녔기 때문이다. 잡히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뛰는 것이 목적이었고, 숨는 것이 놀이였으며, 그 시간을 함께하는 것 자체가 축제였다.
기억은 구불구불한 소나무 위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며 노래를 불렀다. 나무는 마치 함께 춤을 추듯 흔들렸고, 하늘은 내 머리 위로 기울어졌다. 누군가는 뱀을 보고 소리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벌을 쫓다가 달아났다. 위험은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그건 두려움이 아닌 스릴이었다.
우리는 산딸기를 따먹고, 개암을 까먹었으며, 주머니에서 꺼낸 원기소 몇 알로 목을 축였다. 도시락 없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시간 자체가 허기마저 잊게 만들 만큼 맛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멀리서 할머니의 외침이 들렸다. “밥 먹어라—!”
하지만 우리는 들은 체도 않고 산을 더 올랐다. 놀이는 시간이 아닌 ‘열기’로 결정되는 것이었고, 그 열기는 저녁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서야 사그라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규칙을 배웠고, 우정을 느꼈으며, 자연이라는 스승에게 삶의 여러 단면을 배웠다.
넘어지며 아팠고, 몰래 운 적도 있었지만, 그 상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이미 아물어 있었다.
이제는 캠핑도 가고 낚시도 다닌다. 도시의 편리함도 익숙해졌고, 바쁜 하루에도 적응했다.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그 붉은 황토의 뒷산이 살아 있다.
기억이라는 것은 퇴색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더 단단해지는 것임을 나는 그 산에서 배웠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더 안전하고 더 똑똑한 놀잇감이 있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나무 위에서 느낀 바람이 있었고, 땀범벅 얼굴을 닦아준 햇살이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 마음속 그 구불구불한 소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노래를 부르며, 흔들리며, 웃고 있다.
그 시절, 그 놀이는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내 안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는 삶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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