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춘다.
하지만 우리 안의 배꼽시계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하루 세 번.
소리 없이, 조용히 울린다.
허기라는 이름의 알람으로.
우리는 그 부름에 순순히 응답한다.
먹는다. 마신다. 다시 살아간다.
배꼽.
생명의 출발점이자, 어머니와 나를 이어주던 자리.
그곳에 시계가 있다는 상상은 이상하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다.
끊을 수 없는 의존.
육체가 기억하는 생의 리듬.
이 시계는 신분도, 나이도 묻지 않는다.
제왕도, 철학자도, 아이도 똑같이 하루 세 번 호출받는다.
“이제 먹을 시간이다.”
어떤 거대한 이상도,
결국은 한 끼 밥 위에서만 완성된다.
그런데 가끔, 인간은 시계에 반기를 든다.
금식, 단식, 다이어트, 절제.
왜?
배가 고프면서도 먹지 않는 이유는 뭘까?
육체의 리듬을 거스르려는
정신의 의지가 아닐까?
배꼽시계는 단순한 생리적 장치가 아니다.
그건 인간의 한계이자,
우리 안의 경계선이다.
탐닉할 때, 우리는 짐승이 된다.
절제할 때, 우리는 사람이 된다.
밥상은 식사의 공간이 아니다.
그건 시간의 무대다.
우리는 거기서 사랑하고,
기억하고,
이별하고,
다시 살아난다.
장례식장에서도 밥은 나온다.
죽음도 끼니 앞에서는 고요해진다.
우리는 울면서도 밥을 먹는다.
삶은 그렇게,
배고픔을 통해 계속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묻는다.
“진짜로 살아 있다는 건,
배가 고프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배고픔을 자각하는 걸까?”
배꼽시계는 오늘도 조용히 울린다.
나는 밥을 짓고,
그 밥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또 하루를 산다.
*관련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