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버티는 삶, 나는 말뚝이 되고 싶다 – 흔들림 속의 단단함을 그리다

– 서늘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름 없는 자리에서

어릴 적 우리 집 뒤뜰에는
낡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물이 거의 마른 채로 오래 방치되어 있었고,
덮개는 기울어 있었다.

그 덮개를 붙든 건
녹슨 말뚝 하나였다.

나는 가끔 발끝으로 툭툭 차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뚝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무너진 것들 틈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단 하나의 존재.

나이가 들수록,
내 삶 속 몇 장면이 그 말뚝을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울고 있는 친구 곁에
말없이 앉아 있던 어느 밤.

누군가 무너질 때,
함께 주저앉아 바닥을 바라보던 순간들.

기억에도, 기록에도 남지 않았지만
그 순간들 안에 나 있었다.

그게 말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뚝은 누군가를 지탱하지만
스스로는 지탱받지 못한다.

소리 없이 무언가를 붙들고,
흔들림을 막는다.

하지만 그 자리는 고요하고, 때로는 외롭다.
그래서 더 단단해야 한다.

예전엔 중심에 서고 싶었다.
무대 위, 조명 아래, 박수 속에.

하지만 이젠 안다.
무대가 끝난 뒤에도 남는 건
그 무대를 지탱한 말뚝 같은 존재라는 걸.

삶이란,
빛나는 자리에 서는 것보다
누군가를 서게 하는 자리에 묻히는 것 아닐까.

나는 말뚝이 되고 싶다.
드러나지 않아도 단단한 사람.

누군가의 삶이 기울 때,
말없이 그 곁을 지키는 사람.

기억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로 인해 버텼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 나는 안다.
흔들림 없는 삶은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묵묵히 잡아준 덕분이라는 걸.

나도,
누군가의 말뚝이 되어주고 싶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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