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란다에서 이불을 널다가 멈췄다.
맑고 높은 하늘이 눈앞에 가득 차 있었다.
햇살은 부드러웠고, 바람은 조용히 내 어깨를 스쳤다.
그 순간,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밤마다 이불 속에서 울곤 했다.
작은 몸을 웅크리고, 베개를 적시며 소리 없이 울던 그 밤들.
한 번은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아빠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나는 그때부터 ‘조용히 있는 법’을 배웠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면 마음이 들킬까 봐, 내 마음이 엉망이라는 걸 알아챌까 봐.
그래서 나는 잘 웃는 아이가 되었고, 괜찮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한다.
그 시절의 나에게 누군가 단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고개 들어봐.”
그 말 하나면 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든다는 건 단순히 위를 본다는 뜻이 아니다.
그건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이다.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나는 종종 고개를 숙인다.
실수했을 때, 외면당했을 때,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
그럴 때면 하늘은 너무 멀어 보이고, 나는 자꾸만 발끝만 바라보게 된다.
그럴수록 마음속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린다.
“이쯤이면 고개 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가을은 늘 그럴 때 온다.
차가운 공기 속에 조용한 위로를 담아 찾아온다.
기억은 아프지만, 하늘은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려준다는 듯이.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쉰 다음, 천천히 고개를 든다.
세상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하늘을 본다.
이제는 알고 있다.
고개를 드는 일이 얼마나 용기 있는 선택인지.
고개를 든다는 건
살아 있겠다는 조용한, 그러나 단단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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