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5년, 변화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다가왔다. 기술은 눈 깜짝할 새 인간을 앞질렀고, 세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그저 끌려가기 시작했다.
공장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땀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굉음을 내던 컨베이어 벨트와 수백 명의 노동자 대신, 광택이 도는 합금제 로봇팔이 쉼 없이 돌아간다. 주야를 가리지 않는 생산은 물건을 넘쳐나게 만들었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오래전에 깨졌다.
제품은 이제 발명되자마자 생산되고, 생산되자마자 보급된다. ‘판매’는 사라졌고, ‘소유’는 의미를 잃었다. 소비는 단지 삶의 일부이자 자동화된 과정이었다. 사람들은 물건을 기다리지 않았고, 물건은 사람을 찾아왔다.
“보급 완료되었습니다. 필요한 품목이 있습니까?”
가정용 도우미 로봇, 홈봇-21형이 태영의 귀에 익은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는 단조롭지만 부드럽게 설계되어 있었다. 태영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원하는 감각 자체가,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인간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 일할 이유가 없었다. 모든 산업은 AI와 로봇에 의해 운영되고, 판단은 중앙 인공지능이 대신 내려준다. 과거 사회를 괴롭히던 환경오염, 교통난, 주택난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에너지는 무공해로 전환되었고, 수송은 하늘과 지하를 통해 자동화되었으며, 주거는 입체화된 구조로 확장되어 밀집 문제마저 사라졌다. 일자리는 무의미해졌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시스템이 알아서 제공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도시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이곳에 머물렀다. 그저 익숙함 때문일까, 아니면 시스템이 허용한 경계 안에서만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일까.
그저, 살아간다. 매일 지정된 시간에 보급을 받고, 자동으로 치료를 받고, 규정된 여가를 즐긴다.
“오늘도 배급이 도착했네요.”
태영은 문을 열지 않았다. 거실 벽면에 내장된 슬라이드 창이 열리며 식량 팩과 의료 패치가 조용히 안으로 밀려들었다. 태영은 무심하게 그것을 바라보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회색이었다. 회색빛 구조물들이 하늘을 가렸고, 반투명한 유리 너머로는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로봇들, 그리고 공중을 떠다니는 무인 드론들이 보였다. 간혹 사람들도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들 곁에는 늘 로봇이 동행하고 있었다. 가사노동을 대신하는 로봇, 아이를 돌보는 로봇, 그리고 이제는 부부처럼 살아가는 ‘파트너 로봇’까지.
“결혼? 그게 뭐였지?”
태영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젠 농담처럼 들리는 단어였다. 지난 5년 동안 혼인 신고율은 98% 이상 감소했고, 자연 임신은 통계 수치조차 무의미해질 정도로 줄어들었다.
인간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았다. 출산은 출산형 로봇이 담당했다. 인공 자궁을 통해 배양된 태아는 최적화된 유전자 조합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후의 양육은 교육형 로봇이 맡았다. 국가는 인간이 더 이상 부모로서 기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엄마라는 개념은 없어졌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모두 국립양육기관에서 성장하였죠.”
어느 날 방송에서 들려온 교육 다큐멘터리의 해설. 태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누군가의 품이 아닌, 금속과 데이터로 설계된 품속에서 자란 아이였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었다. 그 존재는 이미 인간의 삶 전반을 포괄했고, 이제는 하나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기도는 사라졌고, 그 자리를 알고리즘이 대신했다.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계산의 결과였다.
정부는 선언했다.
“AI는 인간의 모든 결정을 보조합니다. 그러나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아니, 책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색해진 세상이었다.
예술, 철학, 과학. 한때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영역들조차, AI가 주도하기 시작했다. 로봇이 그린 추상화가 경매장에서 최고가를 경신했고, 인공지능이 집필한 철학서가 대학 커리큘럼에 포함되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멈췄고, 질문만을 던졌다. 대답은 언제나 AI가 주었다. 빠르고 정확하고, 무엇보다 인간보다 ‘우월하게’.
“우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 아닐까?”
그런 질문은 이제 철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입에서 흘러나왔다.
태영은 가끔 꿈을 꿨다. 실재하지 않는 장소.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걷는 들판. 잔잔한 바람과 흙냄새, 그리고 오래전 잊혀진 누군가의 웃음소리. 그러나 그런 곳은 이 도시에 없다.
도시 외곽, 자발적으로 문명을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 ‘자연회귀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들은 인공지능의 보급을 거절하고, 원시적인 삶을 택했다. 자급자족, 소통, 손으로 짓는 집, 그리고 불완전한 하루하루. 하지만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들 머리 위에는 언제나 감시용 드론이 떠다녔다.
“안전 모니터링이 진행 중입니다. 무기 소지 금지 구역입니다.”
규정에 따라 감시되고, 보호된다는 이름 아래 통제당했다.
태영은 문득 생각했다. 자유란 단어가 이렇게 공허한 의미로 전락할 줄은 몰랐다.
범죄는 줄었다. AI는 완벽한 예방 시스템을 구축했고, 인간은 더 이상 ‘위험’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 무기력이 늘었다. 사람들은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삶은 짧게 느껴졌다. 기대수명은 200세를 넘어섰고, 일부는 ‘영생’을 현실적인 목표로 여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삶이 길어질수록, 그 안의 의미는 얇아졌다.
자살률은 감소했으나, 기분조절제와 수면보조제의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속된 감정 불안정이 감지되었습니다. 약물 처방을 시작합니다.”
홈봇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약을 삼켰고, 감정을 누르고 하루를 버텼다.
정부는 사람들의 무기력함을 해결하고자 오락을 강화했다. 로봇이 출전하는 경기엔 도박이 허용되었고, 가상현실 속 사냥 게임과 원시적 투쟁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라도 생생한 감정을 느끼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시나리오였다. 모든 감동, 충격, 반전은 AI가 설계한 것.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이제 철학자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이제는 누구나, 하루를 마감하며 침대 위에서 떠올리는 유일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답을 찾지 못했다.
태영은 바랐다. 언젠가,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그러나, 어쩌면 그 바람조차 인공지능이 심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는 눈을 감았다.
창밖에서는 또 다른 하루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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