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운동장 옆 오래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몸을 맡긴 등받이는 약간 기울어 있었고,
앉은 자리에 남겨진 햇볕은
철망 너머에서 사선으로 쏟아졌다.
햇살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마치 사람 사이를 흘러다니는 기척처럼,
조용히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철망 너머에선 중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공을 차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
“야, 패스!” “쏴!” 같은 짧은 외침이
철망 사이로 흘러들었다.
나는 말없이 그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다.
젊은 날엔 내가 저 안에 있었고,
지금은 이 밖에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낯설었다.
아무도 내게 물은 적 없다.
“지금 괜찮으세요?”
“무엇을 기다리세요?”
하지만 나는 늘 뭔가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지나간 시간의 대답,
아직 오지 않은 날의 해명.
그러나 오늘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이 철망 아래에 앉아 있으려고.
철망은 나와 그 아이들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벽이 아니었다.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사이로 바람도, 빛도, 소리도 스며들었다.
문득 철망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그 새는 아무렇지도 않게 위를 스쳤고,
나는 그 움직임을 천천히 눈으로 따라갔다.
철망 위는 막힘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가 철망을 바라볼 땐
갇혀 있다고 느끼고,
또 누군가는 그 철망 덕에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젊은 날엔 철망을 넘어야만 사는 것 같았고,
이제는 그 철망을
가만히 바라보며 살아도 괜찮다고 느낀다.
학생들이 흙바람을 일으키며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누군가 넘어졌고,
누군가는 웃는다.
나는 벤치에 그대로 앉아,
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쩌면 삶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달리지 않아도, 서 있기만 해도,
그 자리에 온전히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 있는 것일지 모른다.
내 그림자가
천천히 벤치 아래로 늘어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
하지만 철망 너머를 바라보는 이 순간,
나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살아 있었다.
“철망은 나를 가두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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