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그리고 연기처럼 사라진 시간들 – 담배와 이별한 이야기”

겨울 저녁이면 어김없이 아파트 후문 구석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른다. 희미한 조명 아래 몇 사람이 모여 담배를 문다. 그들의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무심히 고개를 돌리거나 인상을 찌푸린 채 걸음을 재촉한다. 입구 옆 창문에는 담배 연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니 흡연을 삼가달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하지만 연기는 경고문을 알지 못한다.

이제 담배는 어쩌면 죄책감 섞인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담배가 곧 일상이었고,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던 시절을.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담배를 배웠다. 꼭 피워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말없이 다가온 감정의 무게를 어쩌지 못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목으로 밀려든 연기에 기침을 하며 허둥지둥 삼켰다. 그 순간 나는 어른이 된 줄 알았다. 나만의 공간이었던 하숙방은 친구들이 드나드는 작은 아지트가 되었고, 구석 쓰레기통엔 늘 담배꽁초와 뱉은 침이 뒤섞여 있었다. 용돈이 떨어지고 담배가 다 떨어지면, 나는 주저 없이 쓰레기통을 뒤져 꽁초를 골라 피웠다.

어릴 적 기억도 하나 있다. 방 안에는 막 태어난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기의 숨소리를 들으며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담뱃불을 꺼야 할 때면 장판 끝을 들어 올려 그 아래에 꽁초를 비볐다. 바닥엔 시커멓게 그을음이 남았고, 냄새는 방 안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고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엔 담배가 해롭다는 말을 들어도 실감하지 못했다.

버스 좌석 뒤엔 재떨이가 달려 있었고, 학교 교무실 책상 위에도 늘 재떨이가 있었다. 선생님은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비비며 학생을 훈계했고, 학생들은 학교 뒤편, 옥상, 화장실에서 숨어 담배를 피웠다. 비행기 안에서도 연기가 자욱했으며,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담배는 사회의 공기처럼 어디에나 존재했다.

군대에서는 담배가 일종의 위안이었다. 훈련 중 주어지는 짧은 휴식 시간, 손에 쥔 담배 한 개비는 고통을 잊게 하는 작은 탈출구였다. “담배꽁초도 나눠 피운다”는 가사는 그 시절을 대변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교직에 들어서면서 스트레스는 더 짙어졌고, 하루 두세 갑의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연거푸 들이켰다. 커피와 담배는 나의 습관이자 방어였다. 그리고 나는 그 냄새에 익숙해져 내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담배가 나를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배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의존이었다. 중독이라는 단어는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 후 나는 금연을 결심했다. 처음엔 금연초도 써보고, 니코틴 패치도 붙여보고, 두 해를 참고도 다시 무너지기도 했다. 그 과정을 수십 번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그리고 지금, 금연한 지는 15년이 넘었다.

담배를 끊은 이후에도 담배는 늘 어딘가에 있었다. 거리 한켠, 식당 외부, 아파트 계단 끝, 내가 서 있었던 자리마다 여전히 연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더는 그 연기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담배 냄새가 옷에 배지 않도록 코트를 털던 시절은 지나갔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비난하지도,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내가 거기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을 기억할 뿐이다.

가끔은 상상한다. 담배가 사라진 세상을. 그 세상에서는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장판 밑에 꽁초를 끄지 않아도 되고, 아기 옆에서 연기가 맴돌지 않는다. 학교 교무실에는 재떨이 대신 화분이 놓이고, 지하철 출입구엔 담배 냄새 대신 은은한 꽃향이 머문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연기를 피하지 않고, 누군가의 폐를 걱정하지 않으며, 거리도 숨결도 조금 더 맑다.

금연은 단순히 담배를 끊는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그것은 무언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몸과 마음, 시간과 공간에서 더 이상 지배받지 않는 자유. 나는 그 자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담배를 끊은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조용하고도 강렬한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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