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한옥 고향집, 부모님 떠난 자리에서 마주한 조용한 기억”

시흥에서 강화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지만, 마음만큼은 늘 멀다. 차 안에선 아무것도 틀지 않는다. 음악도, 뉴스도 없이 그저 풍경이 흘러가게 둔다. 고요해야만 겨우 견딜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초지대교를 넘고 좁은 길로 접어들면, 풍경은 갑자기 느려진다. 논과 밭이 드러나고, 바람이 낮게 깔린다. 하늘은 넓고, 빛은 맑다. 그 공기 속에 내 어릴 적 목소리가 아직도 섞여 있는 것만 같다.

대문을 밀고 마당에 들어서자 오래된 나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향나무는 묵묵히 그늘을 드리우고, 감나무와 대추나무는 바람에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어릴 적 그 나무들은 내 세상이었고, 여름이면 감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졌으며, 가을이면 대추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 나무들만은 아직도 그대로다.

대청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섰다. 아궁이는 검게 그을려 있었고, 솥을 걸던 쇠고리는 녹슬어 있었다. 부뚜막 한켠엔 낡은 술병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담배보다 술을 더 가까이 두신 분이었다. 마당 끝에서 막걸리잔을 들고 앉아,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하고 중얼거리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안방 문은 창호지 문 그대로였다. 삐걱거리며 여는 순간, 먼지 냄새와 함께 빛이 스며들었다. 이 집엔 커튼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빛이 문살 사이로 드나들었고, 바람이 자연스럽게 들고 났다. 엄마는 늘 안방에 앉아 계셨다. 조용히 손바느질을 하시거나, 마당을 내다보시거나. 내가 들어서면 “문 조심해라, 종이 찢어진다” 하시며 웃으셨다.

지금 그 문은 반쯤 찢어져 있었고,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그 방 한가운데 앉아 조용히 숨을 골랐다. 아무 소리도 없는데, “밥은 묵었냐”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시간은 앞으로 흐르는데, 내 마음은 자꾸만 그 방에 멈춰 있다.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어릴 적 형제들과 함께 지내던 방. 이 방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기를 유지하던 곳이었다. 겨울이면 새벽마다 어머니가 손으로 불을 지피시던 소리가 들렸다. 방바닥이 따뜻해지면, 그 온기를 따라 이불 속까지 퍼져오곤 했다. 그 온기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점심 무렵, 차를 몰고 바닷가로 향했다. 물 빠진 갯벌 위에 갈매기 몇 마리가 날고 있었다. 방파제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자리. 그는 말수가 적었지만, 손끝과 눈빛으로 많은 걸 말하던 분이었다. 그런 그가 남긴 집은, 말없이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예전 엄마와 함께 가던 슈퍼 자리에 들렀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엔 허름한 창고 하나만 남아 있었다. 순간, 엄마 손이 떠올랐다. 작고 따뜻했던 손.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 작고 단단한 손. 사라진 가게보다, 사라진 손이 더 아팠다.

다시 집 앞에 섰다. 대청을 쓸고, 방 문을 닫고, 아궁이 앞에 쌓인 나무 조각을 한참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감나무 끝에 남은 감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이 집에 올 이유는 없다. 부모님은 떠났고, 남은 건 기억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오게 된다. 어쩌면 이곳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자리인지도 모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조용히 안겨 있을 수 있는 곳.

시흥으로 돌아가는 차 안. 창밖으로 풍경이 흘러간다. 나는 마음속으로 또 한 번 그 문장을 되뇐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돌아올 것이다. 누가 있어서는 아니고, 누군가 있었던 그 자리이기에.

그 자리만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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