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나는 유난히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꿈이 뭐냐는 질문 앞에 머뭇거리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넘어갔다. 친구들이 우주비행사니 과학자니 할 때, 나는 그저 ‘지금’이 좋았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바람을 좇는 일이 전부였고, 거기엔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살아 있었다. 꿈 없이. 그러나 온전히.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만화와 영화에 빠졌고, 활자에 기댔다. 글쓰기를 좋아했고, 웅변은 제법 잘했다. 가끔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시며, 친척들 앞에서 내게 웅변을 시키셨다.
그 무대가 싫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듣고,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좋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뭘 꿈꾸어야 할지 몰랐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역사 선생님 한 분이 내게 말했다.
“너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아이야. 그런 사람은 교사가 되면 좋아.”
그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였던 건, 그때 처음으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교사가 되었다. 거창한 이상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대단한 설계도 없었다.
다만 누군가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삶은 예상보다 조용했고, 때로는 조용해서 고통스러웠다.
배려하고 참는 일이 미덕이라 믿었기에, 내 마음을 오래 눌러두었다. 결국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어둠이 찾아왔고, 오랜 시간 안에서 나를 삼켰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타인의 슬픔이 전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은 부서지고 나서야 진짜 말을 할 수 있게 되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노년이다.
야망도 내려놓았고, 술도 끊었다. 남은 것이라곤 걷기, 글쓰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게는 전부다.
길을 걷다 보면 낙엽 하나에도 시가 묻어 있고, 오래된 벤치에 앉아 있노라면 지나온 삶이 뒤뜰 햇살처럼 따뜻하게 등을 토닥인다.
돈은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그것은 기꺼이 ‘기쁨’이 된다.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단 한 번도 세상에서 도망친 적이 없었다. 꿈이라는 이름의 깃발은 없었지만, 매일 내 자리에서 충실히 버티고 있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길이었다.
요즘 가끔 제자들이 연락해온다.
“선생님, 그때 제 말 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나는 그 한마디면 족하다. 내가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삶에 작은 숨결이 되었다면, 더 이상 무얼 꿈꾸어야 할까.
꿈이 없었다고, 나의 삶이 흐릿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하루를 견디고, 사람을 믿고, 작은 기쁨을 사랑했다.
그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본다.
꿈은 때로 무대 위의 조명이 아니라, 무대 뒤 어둠 속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작은 촛불에 가까웠다.
나는 그 불빛으로, 나의 삶을 비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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