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장을
싫어했다.
춥고,
맵고,
힘들었다.
어른들 사이를 눈치로 오가며
수육 한 점 얻어먹다 혼나던 아이.
그게
나였다.
김장엔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한 걸까.
배추는 왜 저리 무거우며,
고춧가루는 왜 손톱 사이까지 들어오는가.
나는 몰랐다.
김장이 단지 음식이 아니란 걸.
며칠 전이었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들이닥치기 직전,
찬바람이 코끝을 찌르던 오후.
강화도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올해 김장 같이 할래?”
툭 던지는 말투였지만
그 안엔 오래된 우정처럼
뜨끈한 무언가가 배어 있었다.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지금 누가 김장을 같이 하자고 전화를 하나.
시켜 먹는 세상, 사 먹는 세상인데.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같이 하자’는 말.
어쩌면 그 말 안에는
배추 몇 포기보다 더 많은 게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착한 강화도 집.
마당 가득 쌓인 배추,
커다란 대야,
주황빛 양념,
수육 냄새.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
김장을 하러 간 줄 알았는데,
사람을 만나러 간 날이었다.
손으로 무를 섞고,
말을 버무렸다.
웃음이 피고,
등이 맞닿고,
고무장갑 위로 기억이 쌓였다.
배추는 익고 있었고,
우리도 그랬다.
돌아오는 길.
차 트렁크에 김치통을 실었다.
그 안엔
양념보다 진한 우정,
배춧잎보다 따뜻한 온기가 들었다.
김치 냉장고에 가득 넣으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겨울을 저장한 것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을
묻은 것이었다.
익는다는 건
기다리는 일이다.
성급하면 상하고,
묵히면 맛이 든다.
사람도 그렇다.
관계도, 사랑도, 기억도.
시간이 필요하다.
온도도 필요하다.
그 모든 걸 갖춘 게,
김장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젠 김치도 그냥 사 먹는 시대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마트 김치에는
함께 웃던 사람이 없다.
손끝의 추억도,
속 깊은 말도 없다.
올겨울도
냉장고 한 칸을 비워두었다.
그리고
마음 한 칸도.
익어가길 바라며.
천천히,
조용히.
당신은 지금,
무엇을 담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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