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숨긴 땅강아지, 땅을 파는 삶의 철학

아이들에겐 근거 없는 전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땅강아지였다.
운동장 흙밭에서 땅강아지를 잡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
누가 처음 퍼뜨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은 이유가 없다 해도 믿게 되는 나이,
우린 삽을 들고 흙을 파기 시작했다.

“여기 있어!”
누군가 소리쳤고, 모두가 몰려갔다.
손바닥 위에 있던 건 정체불명의 생물체.
고개는 두꺼비, 몸은 귀뚜라미, 팔은 포크레인.
못생겼는데, 묘하게 멋있었다.

나는 그 녀석의 앞발을 엄지와 검지로 눌러보았다.
살짝만 힘을 줬을 뿐인데, 스르르 벌어지며 손끝을 튕겨냈다.
생각보다 힘이 세서 놀랐다.
작지만 단단했다.
그 힘은 누구를 밀쳐내려는 게 아니라, 땅을 파고들기 위한 구조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못생긴 벌레의 등에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날 수 있으나 날지 않는다.
높이 오를 수 있으나, 깊이 파고든다.
하늘 대신 흙을 택한 존재다.
그건 생물학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위로 가라고 배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밝은 쪽으로.
하지만 어떤 존재는 반대로 움직인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방향으로.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자리를 찾는다.

땅강아지는 울 때 땅이 울린다.
지상의 소음 속에선 들리지 않지만,
조용한 밤, 귀를 대면 흙 밑에서 진동하는 소리가 있다.
그건 외침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보이지 않아도 울리고, 작아도 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이다.

사람도 그렇다.
날개가 있다고 해서 꼭 날 필요는 없다.
날 수 있음에도 땅을 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남들이 바라보는 하늘보다,
자신이 믿는 흙을 따르는 용기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로 갈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택하느냐다.
박수 받는 높이가 아니라,
자기만의 소리가 울릴 수 있는 깊이.

그리고 그 소리,
너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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