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매일 편지 쓴 병사, 그는 왜 시인이 되었을까

철원 부대의 겨울은 길었다.
그곳의 바람은 말보다 먼저 다가왔고, 적막은 눈보다 무거웠다.
밤은 늘 깊었고, 그 깊이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전쟁에 진 병사는 용서받을 수 있다지만,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
늘 마음 어딘가에 얼음처럼 박혀 있었다.

나는 행정병이었다.
밖의 병사들은 눈보라 속에서 총을 들고 섰고,
나는 난로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따뜻했지만, 편하지 않았다.
나만이 불 앞에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죄처럼 느껴졌다.
그 죄책감이 나를 앉은 자리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받는 이는 여자 친구였다.
새벽 근무 중, 졸음이 덮쳐오면 펜을 들었다.
단어 몇 개만 적어도 잠이 달아났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깨어 있는 행위였다.
나는 그렇게 매일 밤을 버텼다.
답장은 한 달에 두세 번뿐이었지만,
그 몇 장의 종이가 나를 살아 있게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다.
1년 12달, 2년 3개월.
편지는 산처럼 쌓였고, 말들은 내 안에 길을 냈다.
그 길을 따라, 나는 조금씩 변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던 손끝이
언젠가 나 자신을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끝은 조용히 찾아왔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더 이상 쓸 주소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펜을 놓을 수 없었다.
손이 기억해버린 행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삶이 된다.
그날 이후, 나는 편지를 대신해 시를 썼다.
받는 이는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은 아직도 대답이 없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때의 편지는 정말 그녀를 향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불러낸 나의 목소리였을까.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늘 불 꺼진 자리에서 나를 깨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은 꺼졌지만, 종이는 여전히 따뜻하다.
그 온기로 나는 오늘도 문장을 쓴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밤을 견디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 사람에게 내 말이 닿을 수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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