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저학년 겨울,
나는 눈이 오면 좋았다.
눈싸움도 하고, 학교도 쉬고, 마당에 눈사람도 만들 수 있어서.
하지만 눈이 내리고 며칠 지나면
마을 어귀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허름한 옷차림,
어깨에 자루를 멘 사람,
쇠갈고리를 단 팔을 흔드는 사람,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 차림의 사람들.
나는 그들이 무서웠다.
엄마 치마폭에 숨어서 속삭였다.
“엄마, 문 닫자…”
그런데 엄마는 말없이 부엌으로 가셨다.
우리 집 대문은, 그날도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집도 넉넉하진 않았다.
쌀독이 바닥을 드러낸 적도 있었고
장작이 부족해 언 손을 비비며 잤던 밤도 있었다.
그런데도 거지가 오면
엄마는 항상 대문을 닫지 않으셨다.
아궁이에 가랑잎을 넣어 불을 피우고,
가마솥에서 남은 밥을 데우셨다.
작은 소반을 꺼내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을 차려 내셨다.
흙바닥에 짚을 깔고
그 사람을 앉게 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속이 조금 복잡했다.
‘우리도 별로 없는데… 왜 저렇게까지 하지?’
그 물음에 엄마는 짧게 대답하셨다.
“나중에 너 잘 되라고.”
그 말이 그땐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이상하고,
조금은 창피했다.
친구들이 보면 뭐라 할까 싶어
거지가 밥 먹는 부엌 앞을
조용히 피해 다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장면이 더 또렷이 남았다.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해서리…”라고 하던 거지 아저씨.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밥상을 치우던 엄마의 손.
말은 짧았지만
그 손끝에 모든 대답이 담겨 있었다.
요즘도 겨울이 되면
거리의 노숙자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코끝이 얼어붙는 날이면
문득 그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떠오른다.
어두운 시골 부엌,
작은 소반,
등을 굽히며 앉아 있던 거지,
그리고 묵묵히 밥을 데우던 엄마.
그때 엄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나에게 말없이 가르치고 계셨던 것 같다.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나눌 수 있다는 것.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조건이 따로 없다는 것.
진짜 따뜻함은
행동으로 전해진다는 걸.
나는 아직도 그만큼은 못 된다.
겨울에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내어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아이가 나를 지켜본다면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다짐은 있다.
엄마의 말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다.
“나중에 너 잘 되라고.”
그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관련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