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우물은 냉장고였다 – 시골의 여름, 사라진 풍경을 기억하며

지금처럼 모든 것이 빠르고, 차갑고,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 보면 가끔은 반대로, 느리고, 따뜻하고, 소박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내게 그런 기억의 중심엔 언제나 우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우물은, 어쩌면 우리 가족만의 냉장고였다.

그 시절, 우리 집엔 냉장고가 없었다. 여름이면 음식이 하루를 넘기기 어려웠지만, 어머니는 불평하지 않으셨다. 밭에서 막 따온 채소는 흙이 마르기도 전에 솥에 들어갔고, 상하기 쉬운 콩국물이나 김치는 줄에 매달려 우물 속으로 내려졌다. 깊은 땅속에서 올라온 차가운 물이, 이삼일쯤은 그것들을 지켜주었다. 우물은 얼음도 없고 버튼도 없었지만, 가족의 식탁을 차갑고도 따뜻하게 지켜주는 냉장고였다.

나는 그 우물이 신기했다. 여름이면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웠고, 겨울이면 손등을 데우는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계절의 한복판을 그대로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우물은 땅의 심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겉은 조용하지만, 속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며 우리를 품고 있었던.

하루는 어머니가 말없이 김치그릇을 우물 속에 넣으며 말씀하셨다.
“찬물 속에서도 익는 게 김치지. 사람도 그래. 차가운 시간 안에서야 제 맛이 나는 법이야.”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살아가며 상처도 받아보고, 서늘한 시절을 지나오니 그 말이 문득 마음속에서 익어간다. 차가운 물속에서도 스며드는 온기, 그 안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맛.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마침내 전기가 들어왔다. 얼마 후 고모부가 마늘밭에서 수확한 마늘을 팔아 우리 집에 냉장고를 들여놓았다. 문을 열면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우물은 점점 잊혀갔다. 대신 TV가 들어왔고, 전화기가 놓였고, 수도가 들어오면서 우물은 제 자리를 내어주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자리를 차지해갈수록, 내 마음 한쪽은 비어갔다. 우물가에 앉아 누이와 고무줄놀이를 하던 풍경, 두레박이 철썩 소리를 내며 물에 잠기던 그 순간, 조심스럽게 그릇을 내리고 당기던 어머니의 손놀림. 그것들은 냉장고 속 빛나는 유리 선반 위에는 없었다.

어느 날, 고향집에 들렀을 때였다. 잡초가 무성한 마당 끝에서 나는 멈춰 섰다. 오래된 우물의 돌뚜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조심스레 열어본 우물 안은 더 이상 차갑지도, 깊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빈 우물 안에서 나는 오래전 냉기와 손맛과 말없이 전해지던 사랑의 감촉을 다시 느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는 온도를 유지하지만, 우물은 기억을 품는다.
냉장고는 무언가를 멈추게 하지만, 우물은 무언가를 천천히 익혀간다.
우물 속엔 단지 음식만이 아니라, 시간의 인내와 삶의 온기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제야 알 것 같다.
우리 집 우물은 단지 냉장고가 아니었다.
그건 어머니의 마음이었고, 가족의 계절이었고, 나를 지켜낸 작은 우주의 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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