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쉬어가는 자리, 그늘에 앉은 오후

퇴근길이었다.
버스 정류장 옆,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아이였다.
책가방은 발치에 내려놓고, 손에는 멀쩡한 아이스크림 하나.

그런데 먹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무언가를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나는 멀찍이 서서 그 아이를 바라봤다.
낯선 거리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마음.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그늘처럼 가만히 번졌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마음이 아픈 걸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웠다.

우울하다고 하면
“왜?”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이유 없는 감정은
존중받지 못했다.

그래서 슬퍼도
배가 고픈 걸로 넘겼다.

외로워도
그냥 피곤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마음의 온도를 읽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저 아이도 이유를 모를 수 있겠다.’

어쩌면 친구에게 서운한 말을 들었을지도,
오늘따라 세상이 너무 커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보니 안다.

마음은 논리보다 빠르고,
설명보다 훨씬 섬세하다는 걸.

며칠 전,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요즘 어때?”

나는 평소처럼 답했다.
“그럭저럭 잘 지내.”

하지만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너무 아픈 꿈이었다.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울 때까지도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부서진 마음.

우리는 그런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마음은 늘 나보다 먼저 반응한다.

사람의 말투,
계절의 냄새,

오래된 음악,
잊은 줄 알았던 이름.

작은 것들이
크게 마음을 흔든다.

어릴 땐 그런 걸
약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탔다.

그 아이는
타지 않았다.

창밖으로 다시 아이를 바라봤다.

햇살이
그늘을 조금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마음이
그늘에 앉을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마음은 늘
밝을 수 없다.

가끔은
그저 멍하니 있어도 괜찮은 시간.

말도, 해명도 없이.

그렇게 조용히 쉬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방법일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마음이
그늘에 머물러 있을 땐

억지로 끌어내지 않기로 했다.

말 없이 함께 앉아주는 것.

누군가 내게 그랬으면 좋겠다는
오랜 바람처럼.

나도
내게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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