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깨진 마음 위에 피는 참회 – 중년의 사랑과 상처에 대한 성찰”

태풍이 휩쓸고 간 들판에 섰던 적이 있다.
가지가 꺾인 감나무 아래, 땅에 나뒹구는 주홍빛 열매 몇 개.
손으로 집어들자 물컹한 속살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무리 단단한 것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지금 내 마음이 꼭 그렇다.
젊음이라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는 마침내 멈춰 서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을 본다.
처음 보는 듯 낯선 풍경.
그러나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폐허.
그 자리에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져 있었고,
내가 남긴 흔적이 깨진 하트처럼 흩어져 있었다.

진홍빛 감정의 조각들,
햇살 아래 번들거리며 반짝이던 그 조각은,
누군가의 진심이었고,
내가 헤아리지 못한 사랑이었다.

그 시절 나는 서툴렀다.
미숙했고, 어설펐다.
누군가의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된다는 사실을 몰랐고,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밤을 뒤흔든다는 것도 몰랐다.

그저 감정의 바람이 부는 대로 사랑했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몸과 마음을 맡겼다.

어느 가을 저녁, 한 여인이 내게 말했다.
“넌 따뜻하지만, 그게 어딘가 날카로워.”
그 말이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따뜻하다고 믿었지만,
그 온기는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 곁에 있었지만,
나는 끝내 그녀 곁에 머무르지 못했다.

기억은 바람결처럼 스치지만,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문다.
그때 웃어주던 사람들,
끝내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던 사람들.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지 못한 말을,
이제야 꺼내 본다.
“그때 미안했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사람은 누구나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란다.
나의 젊음이 모두 실수였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실수 속에서 싹튼 진심이 있다면,
그 진심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되새김의 계절이다.
무언가를 얻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놓아주기도 한다.

이 가을, 나는 나를 놓아준다.
그 미숙했던 나를.
그 어설펐던 사랑들을.
그리고 그 모든 상처 위에
작게나마 용서를 심어본다.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참회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어떤 기억은 아픔으로 남지만,
그 아픔이 바로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또 한 계절을 건너간다.
무너졌던 마음 위로, 조용히 낙엽이 내려앉는다.
깨진 하트 조각들 사이로,
새로운 감정의 씨앗 하나가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제는 상처조차 하나의 풍경이 된다.

그리고 그 위로,
나는 다시 한 번,
작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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