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시절, 내 소원은 단순했다.
마음껏 만화책을 읽는 것.
요즘 아이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1970년대의 어린 나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시절 만화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불량서적’으로 취급되었고, 몰래 보다가 들키면 혼쭐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는 내 마음속 가장 환한 공간이었다.
찢기고 낡은 만화책 한 권을 얻기 위해 먼 동네까지 10리를 걸어간 적도 있었다.
친구의 사촌 형이 가지고 있다는 말에, 더운 날씨 속에서도 기대 하나로 걸었다.
손에 들어온 책은 군데군데 테이프로 붙어 있었고, 색이 바래 있었지만, 그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현실에서 멀어져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책을 어머니께 들켰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책을 들고 부엌 아궁이로 향하셨다.
그리고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불 속에 던져 넣으셨다.
순식간에 종이는 검게 말라들었고, 타오르는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날의 냄새와 어머니의 표정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땐 몰랐지만, 어머니는 아마 그 방식으로 아이를 지키고 싶으셨던 걸 것이다.
그 무렵 내게는 또 다른 탈출구가 있었다.
바로 작은삼촌이 읽던 소설책들이었다.
방 한켠 작은 책장에는 오래된 무협소설 다섯 권 세트와 몇 권의 성인소설이 꽂혀 있었다.
삼촌은 자주 책을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 번 들인 책은 버리지 않았다.
나는 틈날 때마다 그 책들을 몰래 꺼내 읽었다.
무협소설은 처음엔 너무 어려웠다.
낯선 한자어, 복잡한 인물 관계, 현실과는 다른 세계.
그러나 이상하게도, 몇 번을 다시 읽을수록 점점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다섯 권을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
결말을 다 알고 있어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책이었다.
어린 나이에 ‘다시 읽는 기쁨’을 처음 알게 해준 책이기도 했다.
중·고등학생이 되자 관심은 영화로 옮겨갔다.
특히 일요일 밤, TV에서 방영되던 명화극장을 손꼽아 기다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광고가 끝나길 기다리다 잠들어 버린 날이 많았다.
그러나 다음 날, 친구들과 전날의 영화를 이야기하며
서로의 기억으로 빈 장면을 메꿔 넣는 일이 이상하게 즐거웠다.
영화보다 더 재밌었던 건, 그 시간을 함께 나누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언제나 ‘갖지 못한 것들’을 동경했다.
그래서일까, 그런 것들이 내 마음속에 더 오래 남았다.
부족했기에 더 상상할 수 있었고, 억눌렸기에 더 간절했다.
간절함은 때로, 풍요보다 오래 남는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보고 싶은 책도, 영화도 손끝 하나로 눈앞에 펼쳐진다.
정보는 넘치고, 영상은 넘쳐나지만
마음속 설렘은 오히려 예전보다 줄어든 듯하다.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기에, 쉽게 잃어버리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 시절 내가 원하던 대로
만화책도, 소설도, 영화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어 있었을까.
더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어른이 되었을까,
아니면 너무 쉽게 지루해진 어른이 되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시절 작은삼촌의 책장에서 꺼낸 낡은 다섯 권의 무협소설,
그리고 먼 길 걸어 찾아간 만화책 한 권이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이라는 사실이다.
손에 넣지 못했던 것들, 빼앗겼던 것들이
오히려 내 마음에 더 깊은 자국을 남겼다.
지금도 문득 그때 그 만화책의 장면이 떠오른다.
익숙한 그림체, 어눌한 대사, 종이의 냄새.
사라진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책장을 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조용히, 마음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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