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가방과 보자기 — 각진 청춘이 유연해지기까지〉

나는 버리는 걸 좋아한다.
쓸모없어진 물건을 정리할 때면 묘한 해방감이 든다.
깨끗이 비워진 공간처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앨범과 007가방이다.

그 가방은 80년대 중반, 용돈을 모아서 산 것이다.
검은 플라스틱의 표면은 갈라지고, 잠금장치는 덜컥거린다.
하지만 그 낡은 가방 속에는 내 젊은 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졸업증서, 성적표, 이력서와 함께
세상에 나가고 싶던 청춘의 의지가 얌전히 누워 있다.

나는 007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그 시절 007은 세련됨과 기술, 그리고 모험의 상징이었다.
주인공이 밧줄에 묶여 있을 때, 손목시계의 톱니가 돌아가며 밧줄을 자르는 장면.
지금 보면 단순한 장치지만, 그때는 마법 같았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 세상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네모난 007가방을 샀다.
철제 자물쇠가 딸깍 닫히는 소리만으로도
세상과 나 사이에 단단한 선이 그어진 듯했다.
가방 속에는 교재보다 꿈이 더 많았고,
그 네모난 틀 안에서만이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의 007가방은 불편했다.
무겁고, 들어가는 물건이 한정적이었다.
가방의 각진 모서리처럼, 나 또한 각이 져 있었다.
계획적이고, 효율적이며, 무엇이든 틀 안에서 재단하려 했다.
정확한 답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다.

그 무렵 정치인들은 서류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녔다.
누군가는 그것을 한국적 유연함의 상징이라 했다.
보자기는 형태를 가리지 않는다.
둥근 수박도, 각진 상자도 모두 품을 수 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007가방은 서구의 합리와 규율을 닮았다면,
보자기는 동양의 여백과 포용을 닮았다.
하나는 틀 안의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틀 밖의 자유였다.

이제는 007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보자기로 서류를 감싸는 사람도 없다.
시대는 바뀌었고,
세련된 가방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기능은 더 좋아졌지만,
가끔은 그 단단함과 따뜻함이 함께 있던 시절이 그립다.

나는 가끔 그 낡은 007가방을 꺼내어 바라본다.
그때의 나는 각져 있었고,
지금의 나는 조금은 풀려 있다.
세상은 정답보다 관계로 움직이고,
정확함보다 온기로 이어진다는 걸
살면서 비로소 배웠다.

보자기는 물건을 싸지만, 사람의 결도 함께 감싼다.
살다 보면 각진 마음도, 구겨진 감정도,
그 보자기 안에서 조금씩 펴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말의 모양보다 마음의 온도를 먼저 느끼려 한다.

007가방은 여전히 내 서랍 속에 있다.
잠금장치는 고장 났고, 안감은 해졌다.
그러나 그 가방은 내 청춘의 증거이며,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그 안에는 내가 있었다.
세상을 자르려 했던 날카로운 나,
그리고 이제 세상을 감싸는 법을 배운 나.
그 두 사람이 한 가방 속에서
오래도록 나란히 누워 있다.

나는 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가방만큼은 버리지 못한다.
그건 물건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절이 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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