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된 숲길을 따라 걷다가, 조그만 옹달샘 앞에 멈춰 섰다.
물이 거의 말라 있었지만, 그 자리엔 아직도 생명이 남아 있었다.
들리지 않을 만큼 작고 조용한 속삭임이 있었고,
그건 아마도 옹달샘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들려주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태양은 그날 따라 무겁게 떠올랐다.
어딘가 먼 아프리카 땅,
백색 해골 목걸이를 두른 마을 위로 이사를 간 듯
따스함보다는 묘한 이질감이 먼저 느껴졌다.
낯선 햇살 아래, 달빛마저 조용히 절여진 듯한 분위기였다.
오래된 나무는 허리가 굽은 채 꿈을 꾸고 있었다.
그 나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그 곁에 앉아 물끄러미 나무를 바라보다가,
옹달샘이 더 이상 속삭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생명은 그렇게, 어느 날엔가 멈추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고개를 들자, 낙엽 하나가 내 앞에 떨어졌다.
그 낙엽은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
마치 아인슈타인의 책상 서랍 속에 숨겨진 오래된 돈봉투처럼,
말하지 않아도 사연이 느껴졌다.
그날 나는 이끼가 낀 바위를 깔고 앉아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듯
시간은 멈춘 듯 흘렀고, 바람조차 조용했다.
그때였다.
바위 틈에서 아주 작은 생명이 움직였다.
작고 붉은빛을 띠는 가재 한 마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가재는 눈을 뜨고 있었고,
그 조그마한 꼬리 밑으로, 알이 몇 개 붙어 있었다.
물속도 아니고, 깊은 바위 틈 속.
그 작은 생명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삶은 늘 그렇게, 끝나는 듯 보이지만
어딘가에서 조용히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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