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방아쇠를 당긴 건 나였다

 

아침이었다.
산 너머 햇살이 눈을 찌른다.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쉰다.
‘찰칵.’
속에서 뭔가
정확하게 준비됐다.

누구도 나를 겨눈 적 없다.
나는
내가 갈 방향을 스스로 정했고,
방아쇠를 당긴 것도
나였다.

그 순간부터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알의 총알처럼.

표정 없이
감정 없이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앞만 보고 달린다.

흙먼지 날리는 마당을 지나
물안개 낀 강가를 건너고
답답한 공기처럼 무거운
사람들의 말과 시선을 통과한다.

길은 명확하지 않다.
표지판도 없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향하고 싶은 곳이 있었고,
그게 있다는 걸
나는 믿었다.

산을 넘고
구불구불한 능선을 따라
끝끝내,
작은 언덕 하나.
모든 소음이 멎는 곳.

거기까지
나는 가고 싶었다.

달리면서 생각은 스친다.
두려움도, 후회도
머릿속에 총알처럼 튄다.
하지만 어깨를 움츠릴 새도 없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죽음을 피한다기보다
삶을 뚫고 가는 기분이다.

넘어지고,
긁히고,
그래도 계속 가는 나.

결국 내가 알게 된 건 이거다.
총알은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
살면서 받은 상처와
지금도 버티고 있는 몸.
그 모든 걸 가지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

그게 살아 있는 탄환이다.

방아쇠를 당긴 건
누구도 아닌 나였다.
목표는 멀고
과녁은 흐리지만,
나의 손은
분명히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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