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계에 선다.
한쪽 발은 지극히 현실에 닿아 있고,
다른 한쪽은 늘 꿈결 같은 어딘가를 향한다.
하루를 살아내면서도,
가끔은 도망치고 싶다.
말 없이, 흔적도 없이,
나조차 모르는 나를 만나러.
회사도, 책임도,
심지어는 가족도 잠시 내려놓고,
그냥 나 하나만으로 숨 쉬고 싶다.
하지만 그 찰나,
아내의 눈빛이 나를 붙든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마음 끝을 붙잡는다.
반란은 늘 시작하기도 전에 조용히 진압된다.
나는 자주 맡긴다.
결정은 아내에게,
일정은 회사에,
내일은 그저 시간에게.
나는 주인공이지만,
대본도, 연출도,
어쩌면 조명마저도 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게서 안정감을 느낀다 한다.
내 속은 늘 바람처럼 흔들리는데,
그들은 어쩌다 내 불안을
그들의 쉼으로 착각하는 걸까.
내 안에선 매일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다.
선을 넘지 않지만,
언제나 그 언저리에 머문다.
넘고 싶다.
가끔은 정말로.
하지만 넘어서는 안 될 걸 나는 알고 있다.
퇴근길 지하철 창 너머
스치듯 지나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하루를 삼킨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몸을 맡기고
천장 위로 가만히 마음을 펼친다.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나는 조용한 얼굴을 한
위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파괴를 품지만,
누군가에게는 온기를 내어주는 사람이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불안과 평온 사이,
현실과 환상 사이,
그 어딘가에서
말 없이 균형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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