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5월 중순인데, 햇살은 벌써 여름을 닮았다.
바람 끝에도 봄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따가운 기운이 먼저 느껴진다.
그럴 때였다.
“이번 주 토요일, 영종도로 물회 먹으러 가자.”
오랜 친구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
장소는 바다 가까운 물회집, 이름도 근사했다.
선녀풍.
마치 선녀들이 바닷물로 회를 말아주는 듯한 이름.
웨이팅이 길다던 말도 설레게 들렸다.
도착한 물회는 바다 그 자체였다.
넓은 유리 그릇에 담긴 육수는 짙푸르고 시원했다.
생선회는 오이, 배, 미역 사이를 유영하듯 흩어져 있었고,
그 위로 고소한 참기름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한입.
혀끝이 먼저 놀라고, 속이 서늘해지고, 머릿속까지 맑아졌다.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입 안에서 여름이 깨어났다.
어릴 적 바닷가가 떠올랐다.
발에 모래를 묻히고 조개를 줍던 여름날.
그 바닷내음이, 지금 이 한 숟갈 속에 있었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여서였을까.
말 없이도 웃음이 흘렀고, 시간은 천천히 물결처럼 흘렀다.
식사 후, 우리는 소무의도에 들렀다.
섬 둘레를 따라 걷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작은 카페에 앉았다.
짠내 나는 바람, 따뜻한 커피 한 모금.
그 순간, 나는 계절 속에 조용히 녹아들었다.
그날의 물회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그건 여름을 먼저 삼킨 날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지금도 마음속에서 잔잔히 파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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