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나는 정말 나의 것일까

 

TV 리모컨을 들었다가
문득, 멈췄다.

아무 소리도 없는 방 안.
창밖으로는 택배 트럭 소리,
누군가 퉁명스레 닫는 현관문 소리.
그 소음들이 파도처럼 멀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셔츠, 내가 만든 걸까?
책상도,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모두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것.

내 몸은 어떨까.
피부와 뼈, 눈동자까지
모두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
이건 내 것이 아니구나.

머릿속 지식들도
책에서 온 말, 누군가의 생각.
곱씹을수록 빌려온 것들뿐이다.

그럼 진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뭘까?

아마도,
혼자일 때 떠오르는 생각들.
누구에게 배운 적 없는 문장들.
그것들이 내 안에서 자라는 걸까?

하지만,
그 생각조차 욕망과 두려움에 흔들린다.
육체는 날 배신하고,
나는 나를 낯설게 본다.

부끄러웠다.
무엇 하나 온전히 나의 것이라 말할 수 없는 현실이.

그러다
방바닥에 떨어진 먼지 하나를 보고,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래, 내가 만든 건 없지만
내 안에, 조용히 자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내 것일까?

고장 난 시계 위로
햇살이 비췄다.
시간은 멈췄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것이었다.

 

*관련글 보기

bungpoet

Recent Posts

사이버 운세를 읽으며 – 디지털 화면 속에서 길을 찾는 인간의 이야기

디지털 화면 속에서 위로를 찾는 한 청년의 이야기. ‘다시 시도해 주세요’라는 문장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5시간 ago

가을 저수지의 파문처럼 – 말 없는 시간 속 이해에 대하여

단풍든 저수지에서 떠올린 부모님과의 기억. 먼저 떠난 어머니, 말없이 남아있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모두 사라진…

1일 ago

장독대 앞 정화수, 어머니의 새벽 기도 — 잊히지 않는 삶의 풍경

새벽마다 장독대 앞 정화수 위에 기도하던 어머니. 그 조용한 떨림이 내 안에서 지금도 살아 숨…

2일 ago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받은 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가장 깊습니다. 아버지의 무시, 아내의 무관심, 친구의 배신으로 무너졌지만, 그 아픔…

3일 ago

“한 달 시한부, 청년의 미소에 피어난 은행잎 — 삶을 노래한 마지막 가을”

한 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청년이 항암 치료 중 가을의 은행잎을 바라보며 웃는다. 고통 속에서도…

4일 ago

“늙는다는 건 남겨두는 일 – 어머니의 마지막 고무줄”

늙으신 어머니가 바지 고무줄을 묶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감성 수필. 늙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와 남겨진 말들을…

5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