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호이안 바구니배 여행기 – 강 위의 회전과 미소

 

강은 잔잔했다.
마치 누군가 찻잔 속 설탕을 다 녹인 뒤, 숟가락을 빼놓은 것처럼 고요했다.

햇살이 수면 위에 반짝이며 흩어졌고,
그 위를 코코넛 나무 그림자가 살짝 덮었다.

선착장은 나무 냄새와 강물의 습기가 뒤섞여, 오래된 사진 속 향기를 품고 있었다.

그곳에 바구니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나무를 정성껏 엮어 만든 둥근 배.
세 사람이 타면 꼭 맞는 크기였다.

발을 올리자 배가 미세하게 기울었고,
물 위에서 작은 파문이 퍼졌다.

사공은 구릿빛 피부에 바람에 씻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노를 저으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

“빨리빨리!”
이어 밝게 웃으며,
“아싸 가오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 머뭇거리다,
“언니 예뻐요!”

그 세 마디가 그의 한국어 전부였다.
억양은 어설펐지만, 말끝마다 장난기와 호감이 묻어났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단어 하나하나가 낯선 강 위에 작은 다리를 놓아준 것 같았다.

말이 더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그 서툰 말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배는 미끄러지듯 강 가운데로 나아갔다.
북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무판자로 만든 작은 스테지 위에서
현지 가수가 한국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다.

발음은 서툴렀지만, 음정은 정확했다.
그 목소리는 흥겨움 속에 묘한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

나는 손뼉을 치고, 작은 지폐를 건넸다.

그때 사공이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이제 베트남 스타일 춤 보여줄게요!”

노가 물을 세차게 가르자,
배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물결이 둥글게 밀려나가고,
하늘과 강이 섞여 돌았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회전이었지만, 곧 속도가 붙었다.

바람이 귀를 후려쳤고,
물방울이 뺨에 부딪혔다.

중심이 무너지고, 속이 간질간질해졌다.

“꺄아아~!”
부부는 서로를 끌어안았지만, 웃음과 비명이 한꺼번에 터졌다.

시야 속 나무, 하늘, 사람들의 얼굴이 빠르게 뒤섞였다.
마치 세상이 원형으로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주변 사공들이 외쳤다.
“오~ 한국사람 롤러코스터!”

배가 멈추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데 사공은 내 눈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말보다 오래 남았다.
햇빛이 그의 주름 사이에 스며,
물결처럼 번져갔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강물 위에 맴도는 것은 물소리보다 그 세 마디였다.

“빨리빨리, 아싸 가오리, 언니 예뻐요.”

서툴지만, 그날 내 기분을 환하게 비춘 세 마디였다.

배에서 내린 뒤에도
그 말들이 귓속에서 물결처럼 부드럽게 흔들렸다.

멀어지는 바구니배 위에서
사공이 다시 노를 저었다.

그의 동작은 느리지만 힘이 있었고,
멀리서도 그의 웃음이 강 위에 번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웃음을 사진 대신 마음에 담았다.
언젠가 다시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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