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왼쪽 어깨가 묵직하게 말 없이 아팠다.
단순한 뻐근함이라 여겼다. 나이 들면 흔한 일이라며 넘겼다.
그러다 어느 새벽, 날카로운 통증이 어깨를 찢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이불 속에서 소리 없이 신음했다.
병원에서는 ‘석회성 건염’이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이름.
몸이 보내온 경고였고, 나는 그걸 너무 오래 무시해왔다.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었다.
언제나 가족 먼저, 일 먼저였다.
‘나는 괜찮다’는 말로 나를 밀어붙였다.
가장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런데, 이번에는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팔이 올라가지 않았고, 양치도 혼자 힘들었다.
한 벌 셔츠를 입는 일조차 힘에 부쳤다.
치료실 한쪽,
어깨에 찜질팩을 얹고 벽을 바라보던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왜 이렇게까지 말하기 전엔 쉬지 못했을까.”
그날 저녁, 아내가 내 팔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아픈 걸 왜 이제 말했어?”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눈빛이 달랐다.
그 눈빛 안에 걱정, 미안함, 애틋함이 동시에 스며 있었다.
그때 알았다.
가족은 내가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으로 있어주길 바란다는 걸.
그날, 치료를 마치고 병원 복도에 앉았다.
조용히 내 어깨를 두 팔로 감쌌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몸짓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독이는 첫 번째 동작이었다.
그 이후로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느릿하게 셔츠를 입고,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고,
작은 통증에도 귀를 기울이기로.
그리고 매일 내게 말한다.
“괜찮아. 이제 너도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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