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한 끼의 위로, 한 끼의 질문

 

요즘은 화면 속이 더 배부릅니다.
스마트폰만 켜면 누군가는 김치찌개를 퍼먹고,
누군가는 치즈 닭발에 눈물을 흘립니다.

“와, 저걸 다 먹는다고?”
입은 감탄하지만, 속은 묘하게 허전합니다.

처음엔 단순히 신기했습니다.
20인분을 혼자 먹는다?
“위장은 뭐로 만든 걸까?”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죠.
나는 먹으면 바로 체하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다르게 보입니다.
저렇게까지 먹어야 할까?
누가 보라고 먹는 걸까?

이제 ‘잘 먹는 것’은 능력이고,
‘맛있게 먹는 척’은 기술이 되었습니다.
식사는 생존이 아니라 콘텐츠,
요리는 감탄이 아닌 조회 수의 재료입니다.

혼밥이 외로운 이들을 위해
먹방이 친구가 되어준다지만,
그건 진짜 위로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허기를 부추기는 걸까요?

요즘 사람들은 말합니다.
“먹방 보면 대리만족 돼요.”
하지만 진짜 배가 고픈 건
입이 아니라 마음 아닐까요?

지금 대한민국은
맛집 탐방이 성지순례가 되고,
요리사가 연예인이 되고,
먹방으로 방송 대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머리를 위한 콘텐츠,
생각할 여백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식채널e’보다 ‘매운 라면 먹방’이 더 인기고,
‘책 한 권 소개’보다 ‘치즈 폭포 떡볶이’가 더 자극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먹고, 살찌고, 병원 가고,
다이어트하다가,
또 먹방을 보며 식단을 짭니다.

배부른 굴레.
빠져나오기 어려운 중독.

가끔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정말 배가 고파서 먹방을 보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와 나눌 따뜻한 말 한 끼가 그리운 걸까?

먹방을 끄고,
책을 펼치거나,
친구에게 전화 한 통 걸어보세요.

말 한 끼,
기억 한 조각이
치즈보다 더 진하게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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