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사람은 왜 편견의 목걸이를 두르고 살아갈까”

어릴 적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화장대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오래된 목걸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금도, 보석도 없었다.
반짝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목걸이는 이상하게 무거웠다.

“그건 그냥 장신구가 아니야.”
할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그건 내가 세상을 살아오며 걸어온 사람들의 시선이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땐 몰랐다.
그게 무슨 뜻인지.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살면서 나는 많은 얼굴을 지나쳤다.
회사원, 노인, 외국인, 아이.
지하철, 버스, 골목길 어귀에서.
나는 그들을 오래 보지도 않았다.
그냥 지나쳤다.
그 순간, 나는 이미 판단을 끝냈다.

말을 듣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묻지도 않았다.
그 사람이 살아온 하루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편견이라는 고리로 만든 목걸이를 두르고 살아간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다.
하나하나의 고리는 오해이고, 침묵이고, 습관이다.

어떤 고리는 오래된 말에서 생기고,
어떤 고리는 TV 속 이미지에서 자란다.
어떤 고리는 부모에게서,
어떤 고리는 내가 만든다.

그 목걸이는 점점 무거워진다.
나는 그걸 걸고 거울을 본다.
그 목걸이를 남에게도 씌운다.
그 사람을 보기 전에, 이미 가려버린다.

얼마 전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마주쳤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표정도, 말도 없었다.
피곤해 보였다.

나는 눈을 피했다.
그렇게 익숙하게.
그리고 자리를 조금 옮겼다.

하지만 그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짧고 조용하게.
나는 당황했다.
그 안에 예의가 있었다.
사람을 향한 인사가 있었다.

내 안의 고리 하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깍.’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했다.

편견은 빠르다.
말보다 빠르다.
생각보다 먼저 온다.
그리고 천천히 사라진다.

편견은 손을 밀어낸다.
눈을 흐리게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완전히 지울 수는 없어도,
풀어낼 수는 있다.
나는 조금씩 그 고리들을 느슨하게 만든다.

요즘 나는 사람의 눈보다 손을 먼저 본다.
그 손이 무엇을 말하는지 귀 기울인다.
떨리는 손끝.
굳은살 박인 손바닥.
주머니 속에서 망설이는 손짓.

그 손은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 손과 내 손 사이에 편견이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고리를 하나씩 풀 준비를 한다.

아직 목에 남아 있는 고리가 많다.
어떤 건 단단하게 엉켜 있다.
하지만 안다.
그 고리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의 말,
혹은 사회가 나에게 건 목걸이였을지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그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언젠가는,
내 목이 아닌 누군가의 손목에 목걸이를 걸고 싶다.
무게가 아닌 의미로 남는 연결.
편견이 아닌 존중으로 엮인 고리들.
그것이 가능하다면,
사람으로 산다는 말도 조금은 더 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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