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나는 왜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로울까”

 

어릴 적부터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게 힘들었다.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왜 웃는지를 먼저 눈치챘고,

말이 오갈 때,
단어 사이에 숨은 감정을 먼저 듣는 아이였다.

그건 마치
음악회에서 유일하게 음향 장비의 잡음을 듣는 기분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그걸
“예민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깨어 있다”**는 뜻이라고 믿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의 온기’를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짊어지고 있었다.

즐거운 척, 괜찮은 척,
다정한 척하는 말들에
하루치 에너지를 다 써버리곤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정도는 다 그래. 너만 예민한 거 아냐.”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더 조용히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모두가 참아내는 것을
나만 못 버티는 것 같아,
내 결함이 어디에 있는지
밤마다 점검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너무 쉽게 물들어버리는
나를 지키고 싶었던 것
이었다는 걸.

나는 고요한 시간을 사랑한다.

창밖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
무심히 넘기는 책장,
문득 스며드는 햇살 하나에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감정의 결을 천천히 다린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내 표정,
그 어떤 평가도 없는 나의 말투.

나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사랑에 진지하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선별적이다.

내 마음은 자주 열리지 않지만,
한 번 열린 문은 오래 닫히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스쳐 지나가기보다,
조용히 머무르고 싶은 사람이다.

이제는 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닫힌 문장이 아니다.

그건 내가 세상과 맺는 관계의 방식이고,
나 자신과 맺는 관계의 언어다.

거리를 두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선택이고,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존엄이다.

어느 저녁,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물었다.

“넌 왜 늘 혼자 있길 좋아해?”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미소 지으며 물을 끓였다.

보글보글 끓는 주전자의 소리 속에서,
그 친구도 곧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아도,
그 순간만은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가 고른 고요는,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더 깊이 기다리는 방식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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