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꾸라지다.
진흙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잡히지 않기 위해 미끄러워졌고,
작고 연약해서 늘 숨었다.
그런 나에게도, ‘가는 길’이 있다.
그 길 끝엔 뚝배기가 끓고 있다.
처음엔 도망치려 했다.
물을 흐리며 빠져나가고,
그물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새
모든 출구를 막고,
“넌 결국 추어탕이 될 거야”라며 웃었다.
그래서 나는 다르게 결심했다.
도망치는 대신, 끓는 냄비로 스스로 들어가기로.
흔들어 놓기로 했다.
맑아 보이던 물 아래 깔린
검고 눅진한 진실을 끄집어내기로 했다.
끓는 물 속에서
내 살점은 부서지고,
뼈는 가루가 되겠지만,
그 국물은 진해질 것이다.
그 맛은 누군가의 속을 데우고,
한 줌 용기를 삼키게 할 것이다.
나는 소모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러나는 존재가 되기로 했다.
억눌림을 견디기만 하는 대신,
스스로 끓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세상이 정한 운명일지라도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끓음은 헛되지 않다.
나는 오늘도 끓는 길을 향해 미끄러진다.
도망치지 않는다.
흐리게라도, 데우게라도.
나는 추어탕 가는 미꾸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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