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장(腸) 속에도 길이 있다

 

곱창집 가는 길.
배고픈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들뜬다.
보글보글 냄비 소리, 매캐한 연기,

입 안에 먼저 차오르는 양념 냄새.
곱창은 그냥 음식이 아니다.
사람 뱃속에서 꺼낸 것과 같은 그 구불구불한 걸,
정성껏 손질해 다시 먹는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몸속엔 소장도 있고 대장도 있다.
음식은 그 길을 천천히 돈다.
그 여정은 조용하지만, 참 중요하다.
곱창을 씹으며 문득 든 생각—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빠르게 사는 세상.
고속도로처럼 쌩쌩 달리다 보면
정작 풍경 하나 눈에 안 남는다.
곱창도 급하게 먹으면 느끼하고 체한다.
삶도 그렇다. 천천히 씹어야 진짜 맛이 난다.

어릴 적, 아버지와 간 시장 골목 곱창집이 떠오른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주시던 손,
“느끼해도 끝에 맛이 있다”던 말.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안다.
되새길수록 진한 게 인생이라는 걸.

곱창 안에 또 다른 장기가 들어간 전골.
서로 다른 것들이 한 냄비에서 끓는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사랑, 후회, 기억, 실수—
전부 들어 있어야 국물이 깊다.

그리고 마지막 한입.
질기지만 고소한 그 맛.
나는 지금, 내 삶을 씹고 있다.
오늘도 곱창처럼, 나를 천천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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