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 위엔 늘 무언가가 얹혀 있었다.
처음엔 이름도 없고, 형태도 없었다.
그저 **‘무겁다’**는 감각 하나만 또렷했다.
어릴 적엔 그것이 부모의 한숨이었고,
사춘기엔 나 자신에 대한 모호한 분노였다.
그리고 지금은, 말하자면,
삶이라는 이름의 깃발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라.”
그 말이 어쩐지 나를 불편하게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왜 나는 평생 고통을 등에 메고 살아야 하는가.
왜 하필 십자가인가.
인간이 짊어질 짐은
늘 고통이어야만 하는가.
그러다 문득, 오래된 기도문을 떠올렸다.
“주여, 제가 짊어질 것을 주소서.
저를 증명할 수 있는 무게를.”
그제야 깨달았다.
인간은 스스로를 ‘감당하는 존재’로 증명해온 생명체라는 것을.
욕망, 시기, 질병, 불안, 후회, 죄책감.
이 모든 감정은 한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표였다.
사랑하고자 하기에 욕망하고,
사랑받고자 하기에 시기하며,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아파할 줄 알기에 걱정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건
‘살아 있음’의 반응이다.
어느 날, 정류장에서 우연히 본 노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허리가 굽어 아내보다 작았고,
아내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눈빛 하나로도 서로의 십자가를 읽어내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처음으로 십자가가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때 문득, 알게 됐다.
내가 짊어졌다고 생각했던 그 ‘십자가’는
사실 나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나를 이끌어온 깃발이었다는 것을.
고통은 나를 망가뜨리는 무게가 아니라,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십자가란, 나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의 무게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이 버거운 것이 아니라
깊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이는 삶을 견디며 살고,
어떤 이는 삶을 통과하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 짐을 진다.
그러나 그 짐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무게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깃발이 된다.
그리고 그 깃발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이유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는 묻고 싶다.
당신이 지고 있는 그것은,
짐입니까?
아니면 깃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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