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언어가 무기가 될 때 — 말이 만드는 편가르기

 

언어는 본래 다리를 놓기 위해 태어났을 것이다.

내 말이 그대에게 닿아 그대의 말이 되고,
그대의 말이 내게 와서 나의 말이 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건넌다.

말은 그 다리 위를 오가는 발자국이다.
어린 시절 친구에게 건넸던 서툰 인사.
엄마가 새벽에 속삭이듯 해주던 위로.
그 말들이 내 안에 불을 켰다.
언어는 작은 등불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언어는 다리보다 돌멩이에 가까워졌다.

회사 회의 자리에서 나는 의견을 내었고,
동료가 맞장구를 쳤다.
그 순간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말들이 모여 제3자를 향할 때,
언어는 이미 ‘우리의 말’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나의 것도, 동료의 것도 아닌,
하나의 깃발.

그 깃발은 누군가를 향해 휘둘려졌다.
언어가 무기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큰 언어는 목소리가 크다.
뉴스의 헤드라인, 거리의 확성기, 다수가 외치는 구호.

작은 언어는 목소리가 작다.
잠 못 이루는 밤의 메시지,
길가에서 들려오는 한숨,
친구의 농담 한 줄.

우리는 큰 언어를 좇고 작은 언어를 흘려보낸다.
그러나 큰 언어가 세상을 흔들 때,
작은 언어는 한 사람을 살린다.

힘은 크지만 마음을 잃은 언어와,
힘은 약하지만 진심을 담은 언어.
우리는 어느 쪽을 더 믿어야 할까.

 

던져진 말은 주인을 떠난다.

가볍게 던진 농담이
누군가의 상처가 되어 돌아온 적이 있다.

설명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말은 공중에서 날개를 달고
제멋대로 편을 짓는다.

중간은 없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받는다.
언어는 다리를 지우고 담장을 세운다.

 

말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가까워질까?

아니다.
말이 쌓이면 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골짜기가 된다.

그 골짜기에는 메아리만 가득하다.
사람들은 오직 자기 목소리만 듣는다.
타인의 말은 사라진다.

 

그러나 나는 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오랜 다툼 끝에 등을 돌린 친구와의 재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던 순간,

그가 조용히 말했다.

“밥이나 먹자.”

그 말 한마디가 벽을 허물고
다리를 놓았다.
언어는 여전히 다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묻는다.

우리가 던지는 말은
정말 누구에게 닿고 있는가.

편을 가르기 위해 쓰이고 있는가,
다리를 놓기 위해 쓰이고 있는가.

언어는 다리일 수도, 돌멩이일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언어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다.

 

오늘 나는 작은 언어 하나를 붙잡고 싶다.

늦은 밤 안부를 묻는 짧은 말,
길가의 농담 한 줄,
누군가의 등을 살짝 밀어주는 속삭임.

그런 작은 언어들이 모여
편가르기의 골짜기 위에도
언젠가 다리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언어가 탑이 될지,
골짜기가 될지,
다리가 될지는—

끝내 우리가 어떻게 말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언어는 오늘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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