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상상으로 끓인 인생의 국물, 태평양 매운탕”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왠지 모르게 뜨거운 국물이 생각날 때가 있다.

매콤한 매운탕 한 그릇.
혀끝을 톡 쏘는 얼큰함,
땀이 흐르는데도 숟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태평양을 통째로 끓여 매운탕을 만든다면?”

상상은 시원하게 뻗은 바다만큼 넓게 퍼진다.
고추장을 양동이째 풀면
바닷물은 순식간에 붉은 국물로 변한다.

소금은 필요 없다.
원래 바다엔 짠맛이 가득하니까.

야채가 없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역, 다시마, 톳 같은 해초들이
바다 곳곳에 몸을 흔들고 있다.
그 자체로 국물 맛은 이미 충분하다.

고기? 넘친다.
멸치, 광어, 상어, 심지어 고래까지.
살아 숨 쉬던 생명들이
그대로 매운탕의 주재료가 된다.

태평양 바닥에서 타오르는 마그마가
이 거대한 국물솥을 지핀다.

바다는 끓고,
국물은 진하게 우러난다.

그 국물을 누가 먹을까?

나는 속초의 바닷가를 떠올린다.
겨울 바람을 맞으며 앉았던 어느 저녁,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던
매운탕 한 숟갈의 따뜻함.

아마 그래서 이 황당한 상상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달군다.

먹방 유튜버들을 부르자.

“1인당 고래 한 마리 제공!”

철로를 잘라 젓가락을 만들고,
군함을 깎아 숟가락으로 쓴다.

과장이지만
이 상상 속에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울린다.

그들이 퍼먹는 모습은
식욕이라는 인간 본능의
거대한 퍼포먼스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남는다.
바다는 넓고 국물은 깊다.

그래서 사람들을 부른다.
“태평양 매운탕, 단돈 만 원.
그릇만 가져오세요.”

냄비든, 아이스크림 통이든, 욕조든
뭐든 상관없다.
마음껏 퍼가라.

왜냐면,
이 국물은
끓이고 또 끓여도 식지 않으니까.

물론, 이건 허황된 상상이다.
하지만
왜 사람은 가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걸까?

아마 현실이 너무 차가울 때,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서
뜨겁고 얼큰한 국물 같은 상상이
조용히 끓고 있기 때문 아닐까.

매운탕이란 결국, 맛보다 ‘온기’다.
입에 남는 맛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 따뜻함.

인생이 싱겁고
차갑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

우리도 한 번쯤,
상상이라는 바다에
고추장 한 숟갈 풀어보자.

세상은 그대로지만
마음만은
매콤하게, 다시 뜨겁게 끓기 시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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