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다시 와야지.
그렇게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만 되뇌던 길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래였고, 그 뒤로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그 골짜기를 나는 느닷없이 걷고 있었다.
햇빛은 나뭇가지 사이로 흩어졌고, 낙엽은 발끝에서 바스락거렸다.
숨을 고르며 산길을 따라 내려가자, 기억 속 집이 그대로 거기 있었다.
낡은 흙벽집은 지붕이 기울고, 벽엔 오래된 금이 퍼져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집은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두 개의 버팀목이 허공에 떠 있었다. 땅에도 닿지 않은 채, 공중에서 집을 받치고 있었다.
현실 같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집 주위는 조용했다.
참죽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스치고, 다람쥐 한 마리가 담장 너머로 머리를 내밀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한 줄기 그리움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나는 마당에 천천히 발을 들였다.
풀잎을 밟는 발끝에서 오래된 감정들이 풀려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지어준 쌈밥, 장독 옆에 기대앉아 듣던 풀벌레 소리, 저녁마다 들리던 바가지 물 뜨는 소리.
기억은 소리 없이 밀려들었고, 나는 어느새 그 시절의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손에는 산등성이에서 꺾어온 고사리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 멈춰 섰다.
말을 꺼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사랑해.”
말이 흙내음 어린 공기를 가르며 허공을 지나갔다.
그 순간, 무언가 안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지붕도, 벽도 그대로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애써 버티던 내 마음의 집이—오래된 감정으로 버티던 그 구조가—지금 막, 조용히 내려앉았다는 걸.
나는 무릎을 꿇었다. 흙에 손이 닿았다.
고사리는 그저 식물일 뿐인데, 이상하게도 손끝에서 온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자연은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쉽게 말해버렸다.
그 말 한마디가, 이 고요한 균형을 깨뜨렸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너짐은 고통이 아니라 안도에 가까웠다.
버티는 것이 목적이었던 날들이 지나고,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가볍게 했다.
그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고사리를 내려놓았다.
그 자리에, 언젠가 작은 들꽃 하나 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꽃을, 나는 다시 보러 올 것이다.
꼭 다시 오리라는 말 없이도,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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