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

비둘기의 아침, 철쭉은 피어 있었다

 

비가 그친 아침이었다.
젖은 도로 위로 햇살이 스며들고
고속도로는 여느 때처럼 분주했다.
차들이 쉼 없이 달리고
나도 그 흐름 속에 섞여 있었다.

그때,
길 한복판에 작은 비둘기 한 마리가 있었다.
몸은 젖어 있었고
한쪽 날개는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비둘기는 몸을 일으켜보려 애썼다.
하지만 날개도, 다리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차들은 그 곁을 지나쳤고
내 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순간 발을 떼려 했지만
곧 다시 액셀을 밟았다.

비둘기는 말이 없었지만
그 눈빛은 분명 무언가를 외쳤다.
“신이시여…”
침묵 속의 절규가
귓가에 남았다.

백미러 너머
작은 몸짓은 점처럼 작아졌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그 길가엔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붉고 화사하게,
방금의 장면을 아무 일 없던 듯 덮고 있었다.

오늘 아침,
나는 저주받지 않았다.
내 차는 무사히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
묻지 못한 물음 하나가 남았다.

그 작은 외침을 지나쳐온 하루,
과연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관련글 보기

bungpoet

Recent Posts

사이버 운세를 읽으며 – 디지털 화면 속에서 길을 찾는 인간의 이야기

디지털 화면 속에서 위로를 찾는 한 청년의 이야기. ‘다시 시도해 주세요’라는 문장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14시간 ago

가을 저수지의 파문처럼 – 말 없는 시간 속 이해에 대하여

단풍든 저수지에서 떠올린 부모님과의 기억. 먼저 떠난 어머니, 말없이 남아있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모두 사라진…

2일 ago

장독대 앞 정화수, 어머니의 새벽 기도 — 잊히지 않는 삶의 풍경

새벽마다 장독대 앞 정화수 위에 기도하던 어머니. 그 조용한 떨림이 내 안에서 지금도 살아 숨…

3일 ago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받은 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가장 깊습니다. 아버지의 무시, 아내의 무관심, 친구의 배신으로 무너졌지만, 그 아픔…

4일 ago

“한 달 시한부, 청년의 미소에 피어난 은행잎 — 삶을 노래한 마지막 가을”

한 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청년이 항암 치료 중 가을의 은행잎을 바라보며 웃는다. 고통 속에서도…

5일 ago

“늙는다는 건 남겨두는 일 – 어머니의 마지막 고무줄”

늙으신 어머니가 바지 고무줄을 묶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감성 수필. 늙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와 남겨진 말들을…

6일 ago